김대중 전 대통령(DJ)의 '국민의 정부'에서 4년여간 도·감청을 했던 사실이 드러남에 따라 X파일 정국은 전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DJ 정부는 현 정부의 뿌리라는 점에서 도·감청 사실은 DJ정부에 타격을 안겨주는 차원에 그치지 않고 현 참여정부에도 불똥이 튈 개연성이 다분하다. 당장 일부 야당은 현 정부 내에서의 도·감청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DJ정부 타격=도·감청 사실을 강력히 부인해왔던 DJ 정부는 정통성과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게 됐다. 국민의 정부에 참여했던 핵심 관계자들은 도·감청이 대통령의 의지와는 달리 정보기관의 말단에서 이뤄진 것임을 주장하지만 국정의 최고책임자로서 DJ는 도덕적,정치적 책임을 피하기는 어렵다. 더욱이 DJ는 재임시절 야당이 도·감청 의혹을 제기할 때마다 자신이 불법 도·감청의 최대 피해자임을 강조하며 인권정부를 자임해왔던 터다. 문민정부에서도 도·감청이 이뤄졌다는 사실에 국민들의 사생활 침해에 대한 불안감도 한층 고조되는 등 사회적 파장 또한 적지않을 전망이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 나오는 '빅 브라더'의 존재가 현실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갖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현 정부로 불똥 튀나=국정원 발표는 도·감청의 불똥이 여권으로 옮겨붙는 것을 의미한다. 김영삼 전 대통령 정부의 불법이 한나라당의 '원죄'라면 DJ정부 불법은 현 정부 여당과 직결된다. 열린우리당 문희상 의장과 이강래 의원이 DJ정부 초반 안기부(현 국정원)에 몸담은 것도 야당 공세의 빌미다. 그간 여당의 일방적인 공세국면이었다면 지금부터는 여당도 자유롭지 못한 처지에 놓인 셈이다. 한나라당의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한나라당은 현 정부의 '정통성'까지 시비를 걸 태세다. 이정현 부대변인은 논평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여권 대선 후보로 본격 나서기 시작한 2002년 3월부터 불법도청이 없었다는 국정원 발표는 신뢰할 수 없는 억지 짜맞추기"라고 비판했다. 권영세 의원도 "현 정부에서 도청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며 "도청이 이뤄지고 있는지에 대한 분명하고 객관적인 확인이 필요하다"고 압박했다. 민주노동당은 "국가의 틀을 다시 짜는 한이 있어도 진상과 책임을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면서 특검과 국정조사,도청테이프 내용 공개 등을 주장했다. 물론 일각에서는 현 정부가 과거 구태정치와의 대대적인 단절을 선언하고 정치권 새판짜기에 나서는 신호탄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재창.양준영 기자 leejc@hankyung.com -------------------------------------------------------------- [ 김대중 전 대통령 도.감청 관련 발언록 ] ▲"도청에 의해 유린당한 현 정부에서 불법 감청이 있다면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1998년 10월 국민회의 지도부 주례보고) ▲"감청대상 축소 등의 법 개정 내용은 의미가 크다."(1998년 12월8일 국무회의의 통신비밀보호법 개정 관련) ▲"불법도청이나 고문,불법 계좌추적 등의 일은 하지 않는다는 것을 엄숙히 말하고 싶다."(1999년 3월25일 법무부 보고회의) ▲"합법적인 감청도 가능하면 줄여나가야 한다."(1999년 9월21일 국무회의) ▲"불법 도청을 해서는 안 된다."(2001년 신건 국정원장 취임때 지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