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취재차 미국 중부도시 세인트루이스를 방문했을 때 현지 대학의 한 동포교수와 저녁식사를 같이 했다. 김치찌개에 소주를 곁들인 조촐한 자리였지만 환갑을 넘긴 노(老)교수의 고국에 대한 향수가 양념으로 더해져 식탁은 참 풍성했다. 인터넷으로 웬만한 국내 소식은 실시간으로 듣고 있었겠지만 노교수는 "한국에서 온 손님 만나 한국 얘기 듣는 게 최고의 낙"이라며 바쁜 시간을 쪼개줬다. 이날 저녁은 1960년대 유학시절 고생담으로 시작됐다. "500달러를 겨우 마련해 미국 땅을 밟았죠. 접시닦기 등 안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어요. 그래도 미래에 대한 희망 때문인지 힘든 줄 몰랐어요. 1970년대 국내 경제가 성장가도를 달리면서 고국에서 들려오는 굿뉴스도 큰 힘이 됐지요." 파전 한 접시와 소주 한 병을 추가할 때쯤 대화는 반미감정문제로 옮겨갔다. 미국 교포사회에서는 그만큼 민감하고 현실적인 문제였을 게다. "한국에 대해 배신감을 느낀다는 미국 사람들에게는 일부 젊은이들 사이에 일어나는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얼버무리지만 속은 답답해요. 친미 하라는 얘기는 안해요. 꾀를 써야죠.요즘 일본 좀 봐요. 미국 비위를 얼마나 잘 맞추는지." 옥수수밭이 많아 교민들 사이에는 '옥수수 깡촌'으로 통하는 이곳은 특히 미국 천주교의 본산지로 주민성향이 보수적이어서 그동안 7000여명 남짓한 교민들이 겪었을 심적 고초가 어느정도 이해됐다. 술자리의 단골메뉴인 정치이야기도 나왔다. "경제가 그 모양인 것도 잘못된 정치 탓이 커요. 표를 의식해 분배다 뭐다 그러는데 아직 파이를 키워야 할 때죠.밖에 나와 있는 사람들이야 뭐 집안이 잘돼야 힘이 생기죠." 노교수뿐만 아니라 200여만명에 달하는 해외동포들의 한결같은 바람일 게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노교수는 "정치 지도자들이 정신 차리도록 언론이 잘 좀 리드해줘요. 우리 민족은 저력은 있는데 말이야…"라고 말했다. 미국의 옥수수 깡촌에서 만난 노교수는 그래도 조국 한국에 대해 한가닥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듯했다. 세인트루이스(미국)=김수찬 사회부 기자 ksc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