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오후 경기도의 남양주종합촬영소. 삼복더위에 에어컨도 틀어놓지 않은 채 촬영이 진행됐다. 재즈바로 꾸며놓은 세트장 내에서 열기가 둥둥 떠다녔다. 연기하는 류승범이나 안길강은 물론이고 뜨거운 촬영기기를 만지는 스태프가 무척 더워 보였다. 그러기를 한 시간 반. 그 열기를 순식간에 식히는 신이 펼쳐졌다. '디바' 인순이가 무대에 올라 감미로운 음악을 들려줬다. 극중에서도 재즈바 가수로 출연하는 인순이는 'My Romance'라는 곡을 나지막하면서도 파워 넘치는 목소리에 실어나르며 세트장 내 짜증스러움을 잠시나마 잠재웠다. 영화 '야수와 미녀'(감독 이계벽, 제작 시오필름ㆍ쇼박스)는 앞이 안 보이는 여자친구 앞에서 미남 행세를 하다가 여자친구가 광명을 찾으면서 자신의 존재를 숨겨버리는 '미남이 아닌'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로맨틱 코미디. 류승범, 신민아, 김강우 등이 출연하며 인순이가 카메오로 화면을 빛낸다. 올 11월 개봉 예정이다. 2시간여의 촬영장 공개 후 출연진들이 참석한 가운데 기자회견이 열렸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 영화에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 ▲영화사에서 연락을 받고 시나리오를 읽는데 줄거리가 정말 재미있었다. 역할 자체가 그동안 내가 해왔던 거랑 다른 것이었으면 망설였을 텐데 노래하는 역할이라 흔쾌히 출연하게 됐다. 대사도 엄청 많다. 두 번 정도 있다. (웃음) 총 3회 정도 등장하는데, 대사 없이 노래 부르는 것이지만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분량은 적지만 아마도 알차게 나올 것이다.(인순이) ▲처음에 시나리오 읽었을 때는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얘기가 아닌가 우려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촬영을 시작하면서 극중 캐릭터와 가까워졌다. 그동안은 남들이 '현장에서 논다'는 표현을 하면 일을 하면서 어떻게 놀까 의아해했는데 이번에 내가 그런 경험을 하고 있다. 굉장히 편하게 촬영하고 있다. 극중 캐릭터는 약간의 백치미를 가진 아이다. 굉장히 매력적인 아이이길 바란다. 영화에 코믹한 요소가 많은데 즐겁게 촬영하다보니 나 역시 어느 순간 조금은 웃길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신민아, 이하 신) --미녀를 상대하는 야수 역이다.꽃미남도 아니지만 흉측한 외모도 아닌데, 야수로 설정된 것이 기분 나쁘지 않나. ▲야수라고 하면 '미녀와 야수'라는 동화에서 나오는 선입견이 있는 것 같다. 야수라는 것이 어떤 뜻인지 영화를 하면서 많이 생각했다.선입견을 조금만 버려주길 바란다. 외람된 말이지만 권상우 씨도 지금 '야수'라는 영화를 찍고 있다. (류승범, 이하 류) --야수라는 의미는 극중 캐릭터가 괴물 목소리를 내는 성우이기 때문인가. ▲그런 의미도 있다. 괴물 목소리 전문 성우다.또 이 친구에게는 콤플렉스 아닌 콤플렉스가 있다. 어떤 이들에게는 인상을 찌푸리게 할 수 있는 상처가 얼굴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잘생긴 남자와 못생긴 남자의 미녀 쟁탈전을 그린 영화는 아니다.(류) --성우 역을 맡아 특별히 연습을 했나. ▲예전에 '아치와 씨팍'이라는 애니메이션을 더빙한 적이 있다.그때 전문 성우랑 같이 했는데 진짜 어렵더라. 게다가 내가 원래 후시녹음을 진짜 못하는 배우라 설령 좋은 목소리를 타고 났어도 성우는 못했을 것 같다. 이번에도 극중에서 좋은 목소리가 아니기 때문에 괴물 전문 성우로 설정된 것이다.(류) --시각 장애인 역인데 어렵지 않았나. ▲영화 속에서 여주인공의 시각장애는 약간의 속임수로 작용하는 것 같다. 분명히 앞이 안 보이는 아이지만 남들이 느끼기에는 마치 눈이 보이는 것처럼 헛갈리게 하는 캐릭터다. 리얼리티를 따지는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연기하는 데는 크게 힘들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 교장선생님 따님이 시각장애인이었는데, 한번은 같이 양호실에서 시험을 칠 일이 있었다. 분명히 앞이 안 보인다는 것을 아는데, 날 더러 "언니, 오늘 따라 너무 예뻐 보여요"라고 하더라. 앞이 안 보여도 얼마든지 밝고 세상을 아름답게 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애는 나보다 오히려 상상력이 풍부했고 밝았다. 그애를 생각하니까 캐릭터 잡기가 쉬웠다.(신) --극중에서 성형외과를 찾아가기도 하는데 실제로 살면서 성형에 대해 생각해본적 있나. ▲살면서 매일 내 얼굴을 쳐다보며 "여길 고쳐야지" 이런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직업상 나랑 어울리는 분들 중에서 상대적으로 화려하고 외모적으로 각광받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 질문을 하는 것 같은데,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보자. 내가 기자였다면 그런 질문을 받지 않았을 것 같다. 직업이 배우라서 그런 질문을 받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아, 중학교 때 한번 여자친구가 쌍꺼풀 만드는 기구를 갖고 와서 한번 눈에 붙여본 적은 있었다. (웃음) (류) (남양주=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prett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