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인력 감축 업무를 맡아 `손에 피를 묻힌' 인사담당자들이 극심한 스트레스로 건강을 해치거나 회사를 그만두고 소송을 냈지만 재판결과는 엇갈렸다. S보험사 인사팀장 김모(46)씨는 2001년 봄 2천여명이던 사원 수를 절반으로 줄이는 강력한 구조조정 중 회사로부터 `감원대상자 300여명을 추가 선정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계속되는 야근에 퇴직 대상자들을 설득하고 노조 간부들을 만나 갈등을 푸느라 잦은 술자리를 가져야 했던 김씨는 그해 5월 만성 B형 간염이 간경변을 거쳐 전격성 간부전으로 악화됐다는 진단을 받았다. 김씨는 업무상 재해 신청을 했지만 근로복지공단은 "격무를 했다고 인정할 자료가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고 결국 김씨는 소송을 냈다. 법원은 "김씨는 업무상 과로와 스트레스에 음주까지 겹쳐 간염이 급격히 악화됐으므로 업무상 재해를 인정해야 한다"며 김씨의 손을 들어줬다. 유명 S전자 임원을 지낸 K씨는 사연은 비슷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인 경우. 24년간 회사에서 일해 스톡옵션까지 받은 K씨는 2002년 1월 상무보로 승진하면서 남들이 꺼리는 계열사 전자제품 판매업체로 발령이 났다. 그해 9월, S전자는 K씨에게 인력 공급회사와 맺은 업무위수탁 계약을 해지하고 회사 판매인력 140명을 강제퇴출시키라는 명령을 내렸다. 회사의 명령에 따라 부하직원 140명을 `날려버린' 김씨는 그 과정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었고 편두통과 녹내장 치료를 받다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말았다. 문제는 스톡옵션. 행사기간에 따라 1억2천만∼3억7천만원에 달하는 김씨의 스톡옵션에 대해 S전자측은 "본인 의사로 사직했으므로 규정에 따라 스톡옵션은 취소된다"고 했고 김씨는 "괴로워서 어쩔 수 없이 퇴직한 것"이라며 소송을 냈다. 법원은 김씨가 인력 강제퇴출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겪은 점과 녹내장 치료비 등을 감안해 2천만원에 합의하라는 조정안을 냈지만 회사측은 "전례가 될 수 있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결국 "김씨가 회사의 강요에 의해 퇴직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지난 1월 S전자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 관계자는 "법대로 판결할 수 밖에 없었지만 정말 찜찜한 판결"이라고 토로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상희 기자 lilygardener@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