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짝은 따로 있다는 믿음은 유혹적이다. 소개받은 사람이 마음에 안들고 얼간이같은 인물조차 진정한 사랑을 찾은 듯 보일 때 이런 생각은 커다란 위안을 준다. 그러나 그런 환상에 사로잡히면 조금만 안맞는다 싶어도 퇴짜를 놓게 되고,그런 습성은 작은 노력으로 완벽하게 유지될 수 있는 관계를 망가뜨리게 된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 조이 브라운은 '당신의 인생을 망치는 매혹적인 환상과 당신을 구원해줄 아름다운 실상'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사랑에 있어서도 화해와 협상은 필수적이며 따라서 '내 분신이 어딘가에서 나를 찾고 있을 것'이라는 환상에 빠져 아무 노력도 기울이지 않으면 자칫 인생을 망칠 수 있다는 것이다. 브라운은 또 더없이 열정적이던 연인과 부부들이 깨지는 건 운명의 짝이라는 환상에 빠져 실상을 간과했기 때문이라고 얘기한다. 사노라면 아침형인가 저녁형인가,돈을 모으기와 쓰기중 어느 쪽을 좋아하는가 같은 문제가 중요한데 이런 걸 무시한 채 그저 '너무 잘 맞는다'는 식으로 생각하다 사소한 차이에도 감정의 골이 깊어진다는 것이다. 브라운의 책을 들먹일 것도 없다. 오래 사귄 사람들도 결혼하고 나면 화장실을 동시에 쓰느냐 마느냐, 된장찌게냐 스파게티냐,드라마냐 축구중계냐 같은 일부터 양가 부모님 용돈은 얼마로 하고 명절 때 어느 쪽에 먼저 갈 것인가 등 온갖 일로 다투고 언성을 높인다. 결혼은 아름다운 꿈이 아니라 차가운 현실인 까닭이다. 남녀 모두 결혼에 이르는 길이 쉽지 않은 가운데 성균관대 이경성 교수가 결혼정보회사(선우)의 의뢰로 '객관적 배우자 지수'를 개발했다는 소식이다. 학력 재산 직업 외모 등 외형적 조건에 성격과 생활습관까지 측정해 점수를 내는 방식이라고 한다. 겉으로 드러난 조건만을 따지던 데서 한걸음 나아간 셈이다. 결혼정보회사에서 매겨온 방식에 따르면 남자는 학력과 직업, 여자는 집안과 외모의 비중이 높다. 남자는 직업 20% 외모 5%인데 비해 여자는 거꾸로다. 조건을 무시할 순 없을 것이다. 결혼은 환상이 아닌 현실이므로.하지만 살아본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다. '웬만하면 성격 좋은 게 최고'라는.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