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강전해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향긋한 화장품 냄새가 배어 있는 대전시 대덕구 중리동 코레일서비스넷 철도콘택센터.여성 상담원으로 꽉 들어찬 안내부스 한쪽에서 남성 상담원 강전해씨(28)가 굵직하고 믿음직스러운 목소리로 고객 상담에 열중하고 있다. "하루에도 서너 차례 정도 전화를 걸어온 고객들이 '안녕하십니까'라는 인사말도 채 끝나기 전에 뚝 끊어 버릴 때는 정말 황당합니다. 고객센터나 콜센터에는 당연히 여자만 있다고 짐작해 전화를 잘못 걸었다고 생각하나 봅니다." 친구들은 '꽃밭'에서 일하니 얼마나 좋겠냐는 농담을 건넸지만 현실은 이와 달랐다. 입사한 뒤 사방을 둘러봐도 온통 여자들 뿐이어서 시선을 둘 곳조차 마땅치 않았다. 게다가 '청일점'인 자신한테만 쏠리는 주위의 관심 속에 의식적으로 '자세'를 갖추느라 퇴근하면 뒷목이 뻐근할 정도였다. 강씨가 금남 구역인 상담센터의 문을 두드린 것은 지난해 6월.충남대 사회복지학과 졸업을 앞두고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던 중 상담원 모집 공고를 봤다. "평소 남들과 대화하는 것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적성도 맞고 한번 해보고 싶은 마음이 불쑥 들었지요." 주위의 따가운 시선도 있었지만 다행히 부모님과 아내가 크게 반대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상담원 일을 만만하게 생각했습니다." 대학 시절 보컬그룹 리더로 활약했고 교회 성가대원으로도 활동해 목소리에는 자신 있었다. 군대 시절 군악대에서 트럼펫까지 불어 성량도 풍부하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입사 초기 하루에 250통 정도 걸려오는 전화를 받으면서 목소리의 높낮이를 조절하지 못해 며칠 지나지 않아 후두염에 걸렸다. 피까지 토했다. 결국 3일 동안 출근도 못 한 채 병원 신세를 졌다. 이 같은 어려움을 자부심과 긍정적 사고만 있다면 성역이란 있을 수 없다는 의지로 극복했다. 강씨는 밤 늦은 시간이나 새벽,혹은 비가 오는 날이면 어김 없이 '백기사'로 활약한다. 여성 상담원들을 괴롭히는 악성 고객이나 스토커들을 도맡아서 대응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욕설을 퍼부으며 행패를 부리다가도 강씨가 진정을 시키고 충분히 설득하면 "미안하다"는 말을 남긴다고 한다. "일을 하다 보면 남자가 여자보다 이성적이고 논리적 해결력이 뛰어나다고 느낍니다. 상담원 일이 어쩌면 남성들에게 더 적합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상담원에게 연장 근무란 없다. 하루 8시간 정확히 교대근무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남는 시간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어 육아와 가족 행사에 참여하기 쉽고 자기계발의 기회가 많은 편이다. 그는 입사 이후 워드프로세서 1급 자격증을 땄고 외국어 실력도 크게 향상시켰다. "관심만 있다면 남성들도 도전해 볼 만한 구석이 있습니다. 다만 평생직장으로 사명감을 갖고 일하기에는 신분이 불확실하고 보수가 낮은 점이 아쉽습니다". 대전=백창현 기자 chbai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