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할머니로부터 남자는 코가 커야 한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결혼 전 사촌오빠가 소개해준 남자를 만나러 갔더니 큰 코가 눈에 띄더라구요. 집안형편이 너무 어려워 헤어질까 했는데 할머니 말씀이 자꾸 생각나는 거예요. 결혼하고 보니 코가 딱히 중요한 이유를 모르겠던데 말입니다." 얼마 전 라디오에서 방송된 청취자 편지의 한 대목이다. 우스갯소리 같지만 어떤 내용이든 반복해서 강조할 경우 사람의 사고와 태도에 의식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걸 보여주는 셈이다. 가훈이나 교훈 사훈을 정하는 목적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구성원들의 마음가짐 및 행동의 테두리를 정해놓겠다는. 가훈이나 교훈이 개인의 인성 함양 위주로 만들어진다면,사훈(社訓)은 회사의 발전을 위한 실천지침으로 제정된다. 창업자의 경영 철학을 담는 동시에 구성원들의 정체성과 행동의 원칙을 제공하는 것이다. 사훈 중엔 '자유 책임 품격 단합'처럼 몇 개의 단어로 이뤄진 것도 있고 '또또 사랑''즉시 하자!'같은 것도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제조업체 근로자를 대상으로 사훈에 대한 의식을 조사했더니 42.6%가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답했다고 한다. '성실''창의''인화' 등의 단어가 들어간 게 많고, 불만의 가장 큰 이유가 '고리타분하다'였다는 걸 보면 추상적 단어의 사훈으론 젊은층의 공감을 얻기 어려운 모양이다. 어떤 사훈이 가장 좋으냐에 대한 정답은 있을 수 없다. 최근엔 사훈이 없어야 사고가 고정되지 않고,창조적으로 생각함으로써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며 만들지 않는 곳도 나온다. 사훈이 뭐든 구성원들이 동의하고 그에 따라 움직인다면 기업의 발전과 임직원의 단합,이미지 제고에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사훈이 뭔지 모르고 알아도 '그래서?'식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다면 없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사훈이 죽은 글귀가 되지 않도록 하자면 구성원 모두 공감하고 실천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사훈의 원칙이 업무 수행과 평가의 바탕이 되도록 해야 함도 물론이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