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하는 삶은 아름답다] 1부 : (2) 첫 여성 철도기관사 강은옥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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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잘해보자,사랑한다!" 지난 3일 오후 6시55분 서울시 용산구 용산역 철도승무사무소 차량 기지. 10여분 전부터 시동이 걸려 있던 1013호 새마을호 조종실에서 기관사 강은옥씨(37)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자신의 애마(愛馬)인 'PP(Pull and Push) 기관차'에 가장 먼저 인사를 한 그는 출발 기어인 T자 레버를 밀어올렸다.
곧 무게 800t,총 길이 320m에 달하는 새마을호가 육중한 몸체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열차가 승객을 태우기 위해 서울역으로 이동하는 사이 강씨는 능숙하게 ATS(Auto Train Stop) 시스템,열차방호 시스템 등 다양한 안전장치를 소개했다.
"기관차를 정말로 사랑하면 사고가 나지 않는다고 해요. 믿기 어렵겠지만 진짜로 기관차와 대화를 나눈다니까요."
기관차가 고장났을 때는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아프니? 나도 아프다!'를 되뇐다. 이제는 엔진 소리만 들어도 기관차의 상태를 알아차릴 만큼 '일심동체'가 됐다. 덕택인지 큰 사고 한번 없었다.
국내 1호 여성 철도 기관사란 그의 타이틀은 도전으로 얻은 성과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스물여덟의 나이에 철도대학(2년제)에 입학한 것이 첫 번째 도전. 지금은 3680명의 기관사 중 여성이 33명에 이르지만 당시만 해도 '금녀(禁女)의 길'을 걷는 여인이란 칭호가 뒤따랐다.
"지난 93년 대학(건국대 철학과)을 졸업하고 3년간 학원 강사를 했었는데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다는 욕구가 강했어요.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의식하는 것은 남의 인생을 사는 것이라고 믿었지요."
2000년 정식 기관사로 승진한 그는 내친 김에 2002년 공중파 라디오의 여행프로 진행자로 데뷔했다. 어려서부터 전국을 쏘다닌 경험이 주효했는지 고정 팬이 생겨날 정도로 제법 인기를 모았다. 출판업을 하는 남편의 권유로 유명 주간지에 여행 관련 칼럼도 기고했다.
2000년 결혼한 세 살 연하 남편은 어려울 때마다 든든한 지원자가 됐다.
물론 고비도 있었다. 휴일 평일을 가리지 않고 대여섯 시간씩 초긴장 상태에 빠지는 장거리 운행 등 20대 초·중반의 남자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하는 근무 특성이 문제였다. 조종실을 뒤흔드는 소음과 진동 때문에 즐겨듣던 음악까지 끊었다.
하지만 "여자가 별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깨겠다는 오기로 이를 악물었다. 새벽마다 수영과 요가,헬스를 다니며 부족한 체력도 다졌다. 초년생 시절 그토록 쏟아지던 졸음도 최근 들어 운행 전 커피 한 잔으로 능히 물리칠 정도가 됐다.
2003년 그는 또다시 도전의식을 발휘했다.
입사 6년차인 그해 인도로 1년간 유학가기 위해 휴직계를 냈다. 남편도 없이 달랑 혼자서였다.
매너리즘에 빠질 것만 같았던 자신을 추스르기 위한 결정이었다.
덕분에 수준급 영어를 덤으로 얻었다.
"언제부터인가 최초,최고보다는 '최선'이란 단어가 좋아졌어요."
성공에 집착하기보다 자기 직업에 미치면 뭐든 이룰 수 있다는 게 그의 믿음이다.
그의 다음번 도전이 궁금해진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