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복도 끝이 반투명 유리문으로 막혀있는 종로경찰서 4층.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벽에 붙은 나무 간판에 `서울지방경찰청 여경기동대'라고 적혀 있다. 이곳이 시위대와 진압 경찰 사이에 자칫 거친 몸싸움이 생길 수 있는 집회 현장에서 `부드러움'으로 `폴리스라인'을 치는 여경기동대(서울지방경찰청 기동단 제1기동대 98제대)의 본부다. 기자는 59주년 `여경의 날'을 하루 앞둔 6월30일 여경의 하루를 동행취재하기로 약속하고 이른 아침 여경기동대 본부를 찾았다. 문을 열자 기자를 맞이한 것은 일반 경찰관서에서는 쉽게 떠올릴 수 없는 `밝고 화사함'이었다. 경찰서 형사계에서는 상상조차 어려운 `향기'를 맡고 젊은 여성 특유의 경쾌한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밝은 사무실 분위기를 즐기는 것을 접고 여경기동대원의 훈련 현장으로 따라나섰다. 이날처럼 별다른 집회 일정이 없는 날은 서울 중구 신당동의 경찰기동단 상무관에서 범인을 잡는 무도 기술인 `체포술'을 연마한다. 유사시에 대비해 무술을 닦고 체력도 기르기 위해서다. `기대마'라고 부르는 전용 이동 버스에 올랐다. 카메라를 들이대자 `꺄악' 소리를 지르면서도 머리 모양을 다듬는 모습이 영락없는 여느 20대 여성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차에서 내릴 때는 `수인'이라 부르는 여경의 명령에 따라 절도있게 두 줄로 내려 질서정연하게 상무관으로 향하는 모습이 사뭇 긴장감까지 감돌게 했다. 훈련장에 도착하자 마자 수인 이정은(27) 순경의 지휘 아래 양말과 시계를 벗고 체조 대형으로 선 뒤 국민체조와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기 시작했다. 몸을 풀고 지도 교관에게 체포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날 첫번째로 연마한 동작은 상대가 주먹으로 공격해왔을 때 방어하는 법이다. 몇 번 예비 동작을 취하더니 갑자기 카랑카랑한 기합소리가 체육관을 울리자 순식간에 범인역할을 맡은 여경이 매트 위로 나동그라진다. 넘어진 여경이 "아프다"며 얼굴을 찡그리지만 상대는 "연습은 실전처럼"이라며 인정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후텁지근한 날씨에 냉방은커녕 환기도 제대로 되지 않는 체육관 속에서 이들의 몸은 순식간에 땀범벅이 됐다. 종로경찰서 본부에서 처음 느꼈던 `아가씨'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비로소 경찰의 본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여자 경찰'이 아니라 `경찰인데 그저 성별이 여자일 뿐'이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기동대를 인솔한 팀장 정정민(30) 경장에게 대원들에 대해서 이것저것 물었다. "요샌 경찰 시험 경쟁률이 높아져서 그런지 대원들이 경찰이 돼 일할 수 있다는 것 자체를 자랑스러워 합니다. 일에 대한 애착이 깊어서 무슨 일을 시켜도 불평 없이 잘 따라줘서 제가 감사할 정도죠" 그 역시 경찰 입문을 이곳 여경기동대에서 시작해 후배를 바라보는 심정이 남다르다고 했다. 여자로만 이루어진 기동대 2년 근무 후 방배경찰서 여성청소년계와 남부지구대에서 근무한 정 경장은 한 부서에 기껏해야 한두 명 있는 `소수자'로서 여경의 고충도 털어놨다. "지구대 근무 때 밤을 새다 보면 어쩔 수 없이 깜빡하고 졸 때가 있는데 똑같이 졸아도 `저 여경은 늘 졸고 있다'는 소리가 나와요. 나 하나 실수로 전체 여경을 속단하기 때문에 행동 하나하나에 더 조심해야 하죠" 여경으로 일하기가 힘들지만 그렇다고 여경이어서 특별대우 받고 싶진 않았다는 정 경장은 지구대 행정부서로 발령을 받았지만 곧바로 상관을 찾아가 `험한' 모습도 보고 밤도 꼬박 새야 하는 지구대 업무에 자원했다고 한다. "신체구조가 남자와 완전히 똑같이 일할 수 있다고는 생각지 않지만 그렇다고 몸을 사리고 싶지도 않죠. 그래서 똑같이 밤새워 당직을 서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요즘 출산율도 낮은데 출산과 육아 부분엔 복지가 향상됐으면 해요" 버스를 타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오니 뜻밖의 `선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기동대장이 `여경의 날'을 맞아 다과회를 준비한 것이다. 작년 10월에 경찰이 된 대원들에겐 처음 맞는 여경의 날이라 조촐한 자축 파티를 마련한 것. 근무 시간이라 주스잔으로 건배를 했지만 `대한민국 여성과 98제대를 위하여!'라는 구호는 힘이 넘쳤다. 잠시 휴식이 끝나자 곧 내무반으로 들어가 집회ㆍ시위 진압에 투입되기 위한 준비를 했다. 따라들어간 내무반은 `정리정돈'이란 단어 한 마디 밖에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깔끔했다. 진압복으로 갈아입은 대원들은 진회색의 제복 탓에 조금 무거운 인상을 풍겼다. "저희도 일반 정장과 비슷한 정복이나 밝은 파랑색 교통복을 좋아해요. 진압복은 `인물 버리는 옷'이라 불러요" 예의 `꺄르르' 웃는 웃음으로 이렇게 말하자 진압복의 무게도 금세 사라진다. 한미연(26) 순경은 `제복이 멋있어 경찰이 되기로 했다'고 할 정도로 여경들은 제복에 애착이 있는 듯 했다. 그러나 정경화(26) 순경은 "영화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가 제복입은 여경을 멋지게 그리기는 했지만 실제로는 극히 제한적인 총기 사용을 미화해 묘사하는 등 현실과는 약간 다르다"고 말하기도 했다. 모두 다 하나씩 들고 있는 가죽 가방 속에 뭐가 들었느냐고 묻자 진압 대기 중에 자투리 시간을 보낼 책과 음반 등이 들어있다고 답했다. 실제로 이날 집회는 다행히 돌발 사고 없이 `조용히' 끝나 대원들은 버스 안에서 음악도 듣고 공부도 하며 계속 대기 태세를 유지했다. "저희는 불법 시위 상황에만 출동해 진압하는 게 임무이기 때문에 조용한 집회 때는 대기만 하고 있어요. 사실 이렇게 저희가 나서지 않는 집회가 많을수록 바람직한 거죠" 미래의 강력계 형사를 꿈꾸는 김하나(26) 순경의 설명이다. 이날은 평화로운 하루였지만 전날 있었던 `최저임금인상요구집회'에서 여경기동대는 정신없이 뛰어다녀야 했다. "어젠 집회가 과격해져서 참가자를 연행하게 됐는데 일부 시위대가 등산화로 얼굴을 차고 머리채를 잡아 채기도 했어요. 그래도 저희는 시위대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맞설 수는 없는 일이지요" 기동대의 막내인 한성민(24) 순경은 흥분한 시위대에게 팔을 물린 적도 있단다.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열 시간이 넘도록 버스에서 대기하다 보면 화장실 가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귀띔했다. 계속 대기하다가도 돌발 상황이라도 터지면 좁은 버스 안에서 교통복으로 갈아입고 폴리스라인을 만들어야 하는 일도 만만치 않다. 노혜진(27) 순경은 "남들처럼 휴일에도 쉬지 못하고 불규칙한 근무 시간 때문에 힘든 적도 많지만 초등학교에 교통교육을 가면 아이들의 환호에 경찰임이 너무나도 자랑스러워진다"고 말하며 뿌듯해 했다. 한성민 순경은 작년 크리스마스 이브 `사이드 카'라고 불리는 순찰 오토바이에 타고 한겨울의 날씨를 온몸으로 막아내야 했던 일을 들려줬다. "너무 추워서 내무반에 `엉엉' 울면서 들어갔을 때가 제 스물넷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을 때였죠" 그렇게 힘들 땐 어떻게 이겨내느냐는 질문에 한 순경은 "그래도 경찰이 되겠다는 일념만으로 노량진 학원가에서 잠자는 시간을 제외한 시간을 공부에 쏟아붓고 시험에 합격했을 때의 희열을 떠올리면 힘든 게 싹 가신다"고 말했다. 60: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는 경찰관 시험에서 공부도 공부지만 다른 특기가 가산점을 많이 받기 때문에 기동대원 모두가 무술 유단자임은 물론, 남자도 힘들다는 대형 운전 면허 소지자도 상당수인 것도 이들의 자랑이다. 이정은ㆍ최종혜 순경은 정교사 자격증이 있고 피부관리사 양장기능사 같은 특이한 자격증이 있는 순경도 있는가 하면 정경화 순경은 합기도 3단, 한성민 순경은 태권도가 4단이다. 어느덧 집회가 끝나고 사무실로 돌아온 대원들은 순식간에 파란 색이 싱그러운 교통복으로 갈아입고 한여름 뜨거운 아스팔트 도로 한복판에 배치됐다. 광화문 사거리 이순신 동상을 등지고 세종로 한복판에 서서 금세 뜨거운 지열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최지영(25) 순경은 "이 넓은 벌판(?)에서 내 신호에 차들이 고분고분하게 말을 잘 듣는 걸 보면 더위도 가신다"며 웃는다. 정지 신호를 따르지 않은 외제차 한대를 `근엄하게' 뒤로 물린 최 순경의 등은 땀으로 젖었지만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호루라기 소리와 손동작은 지칠 줄 모르고 서울 시내 한복판을 지휘했다. 하루종일 도로와 집회현장을 쫓아다니느라 한창 `좋을' 나이에 남자친구는 어떻게 사귈까하는 `걱정 아닌 걱정'을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남자친구도 경찰인 `사내 커플'이 많다고 했다. "밖에서는 `여경'하면 당차고 똑 부러진 이미지로 좋게만 생각하지만 실제론 힘든 일이 많아요. 법을 집행하는 최전선에 섰다는 자부심과 의지가 없으면 버텨내기 힘든 일입니다" 그들에게 `부드러움'은 그대로 머물지 않고 어느새 `강함'의 동의어로 쓰이고 있었다. (서울=연합뉴스) 조성미 기자 helloplu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