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도라의 상자가 열릴 것인가.'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이 검찰 조사과정에서 자신의 5년8개월간 해외도피 배경과 관련해 "이근영 당시 산업은행 총재가 잠시 나가 있으라고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일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기호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이 출국을 권유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김 회장이 출국 권유자로 특정인을 지목한 것은 2003년 1월 미국 포천지와의 인터뷰에서 DJ(김대중 전 대통령)를 거론한 데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이와 관련,검찰은 29일 "아직 본격적인 수사가 이뤄지지 않아 아무런 언급도 할 수 없다"며 공식 확인을 피했다. 그러면서도 "대우 입장과 채권단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할 수 있다. 한 개인(김 회장)이 지나가는 투로 말한 것을 공식적으로 언급할 수 있나"라고 밝혀 묘한 여운을 남겼다. 김 회장은 구속수감 직후 출국배경을 묻는 질문에 "채권단과 임직원이 권유해서"라고 답했다. 이를 두고 해석이 분분했지만 결국 이 전 총재를 염두에 두고 '채권단'을 언급한 것이며 검찰도 이를 우회적으로 인정한 셈이 됐다. 당시 산업은행은 대우가 해체되던 1999년 8월 당시 대우그룹 11개 계열사에 3조9800억원의 여신을 보유한 최대 채권자였으며,동시에 채권단 내에서 정부측 입장을 대변해 왔다. 이 총재의 김 회장 출국 권유는 정부가 김 회장 출국에 개입했다는 짙은 의구심을 낳는 대목으로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대우 관계자는 "대우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수십조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됐지만 당초 정부측과의 합의대로 김 회장이 국내에서 대우를 정상화시켰다면 국민경제적 손실은 훨씬 줄어들었을 것"이라며 "김 회장의 자진출국과 강제출국 여부는 김 회장 본인은 물론 대우인들의 명예도 걸린 중대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이 전 총재는 "김 회장은 워크아웃에 잘 협조해 달라고 당부하기 위해 딱 한 번 만난 적이 있을 뿐이다. 내가 김 회장의 출국을 권유한 적도 없고 또 나가라고 한다고 해서 나가겠느냐"며 관련 의혹을 부인했다. 검찰은 사법처리 여부와 관계 없이 국민적 의혹 해소차원에서 필요하다면 이 전 총재를 소환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