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포럼] 여성가족부의 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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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희 < 논설위원 >
'패어런트 트랩'이란 영화가 있다. 낸시 마이어스라는 여성감독이 만든 가족물로 쌍둥이딸을 낳은 뒤 이혼, 한 명씩 맡아 키우던 부부가 어린이캠프에서 부딪친 딸들의 공작으로 재결합한다는 내용이다. 갈라선 이유는 간단하다. 젊은 두 사람이 각자 제 일을 추구하다 보니 갈등을 빚은 끝에 서로 맞지 않는다고 여겼던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만난 부부는 뜻밖에 많은 공통분모를 발견,다시 가정을 꾸미기로 합의한다.
여성감독의 작품이 아니라도 할리우드 영화의 가족 사랑은 진하다. 하층 여성의 삶을 다룬 '돌로레스 클레이븐'같은 페미니즘물, 중년남성의 일탈로 인한 비극을 다룬 '아메리칸 뷰티'를 비롯한 사회물, 로봇사회를 가정한 'AI' 등 SF물, 디즈니와 드림웍스의 만화영화 할 것 없이 가족 내지 가정 지키기라는 주제를 꼭 잡고 놓지 않는다. '다이 하드'같은 액션영화에서조차 부부는 물론 부모 자식 간 사랑을 내세우거나 바탕에 깐다.
할리우드가 가족에게 이처럼 질기게 매달리는 건 미국사회의 가족 해체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반증일 수 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문제가 없으면 그토록 자주 거론될 리 만무한 까닭이다. 분야별 최초의 여성이 화제가 되는 건 한국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여전히 낮다는 얘기고, 신데렐라 드라마가 양산되는 건 여성의 홀로서기가 어렵다는 증거다.
여성부가 생길 때 "남성부는 왜 없느냐"라는 주장이 있었지만 그건 굳이 남성부를 따로 만들지 않아도 됐던 까닭이다. 여성학이 인간은 곧 남성이라는 전제 아래 이뤄진 학문의 일방적 시각 때문에 태동됐다면, 여성부는 국민은 곧 남성이라는 인식 아래 이뤄진 기존 제도와 현실이 여성 개개인이 감당하기엔 벅찬 데서 출발했다고 할 수 있다.
여성부가 여성가족부로 확대 개편된 건 여성문제 해결과 함께 '가족공동체 살리기'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우리 사회의 당면과제임을 의미한다.
실제 상황은 절박해 보인다.
결혼은 늦고 이혼은 급증하면서 출산율이 세계 최하위로 떨어지고 가족해체 내지 가정붕괴 속도는 아찔할 정도다.
1인 가구 15.5%, 한부모 가구 9.4%, 부부 가구 14.8%라는 수치는 가정이란 최소한 부모와 자녀로 구성되는 것이라는 공식이 빠르게 깨지고 있음을 드러낸다.
전통적 의미의 가정이 이뤄지지 않거나 무너지는 데 따른 부작용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낮은 출산율은 생산인구를 감소시켜 경제 발전을 가로막고,가정 붕괴는 어린이 양육과 노인 부양을 국가가 떠맡아야 하는 사태로 이어질 게 불보듯 뻔하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의무감이 애정을 대신할 순 없는 만큼 가정의 역할을 대행할 기관은 없다.
23일 출범한 여성가족부의 어깨는 따라서 몹시 무겁다.
여성의 지위 향상·영유아 보육·가족정책의 수립 조정 지원이라는 다양한 업무 중 어느 것 한 가지도 간단하지 않고,시급한 출산율 제고는 육아와 보육에 관한 획기적 대책 없이는 뾰족한 수가 없다.
새로운 가족가치관 정립은 남성들의 의식전환이 전제돼야 가능한 일이다.
그래도 여성가족부에 기대보는 건 여성인력 활용과 가족공동체 살리기를 외면한 채 우리의 미래를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