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배 나산 사장 '아름다운 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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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관리 회사라고 자꾸 움츠러들면 더 부실한 기업이 됩니다."
법정관리인으로 지난 6년간 부실기업 나산을 회생시킨 백영배 나산 사장이 이달 말로 예정된 '아름다운 퇴장'을 앞두고 21일 후임 법정관리인들에게 던진 충고다.
그는 "법정관리인이라고 소극적인 '수비경영'만 하면 악순환의 구렁텅이에 빠진다"고 강조했다.
직원들의 기를 살리고 공격적 경영을 펼치는 정상적인 최고경영자(CEO)라야 부실 기업을 회생시킬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백 사장은 효성물산 부회장으로 근무하던 1999년 서울지방법원으로부터 나산의 법정관리인으로 선임돼 지난 6년간 나산을 600억원의 적자기업(98년)에서 179억원의 흑자기업(2004)으로 탈바꿈시켰다.
2002년부터 2004년까지는 법원으로부터 최우수 법정관리인으로 선정돼 3년 연속 특별 보너스를 받아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2년의 임기를 세 번이나 연임하며 나산을 정상 궤도에 올려 놓은 그는 "좋은 평가를 받을 때 퇴장하고 싶다"며 최근 퇴임을 선언했다.
99년 법정관리인으로 선임된 직후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법원의 반대를 무릅쓰고 직원들의 월급을 올려준 것.직원들의 사기를 살려야 회생에 성공할 수 있다며 법원을 설득했다.
지금은 백 사장보다 연봉을 더 많이 받는 디자인 실장이 있을 정도.그는 "과거 이 회사의 디자인실은 일만 배우고 기회가 되면 떠나는 마치 연구소 같은 곳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캐주얼한 분위기,어떤 대화도 나눌 수 있는 '통풍이 잘 되는' 조직을 만들기 위해 직원들과 직접 살을 맞댔다.
매주 신제품 회의 때 참석해 "수고한다,훌륭하다"며 직원들을 격려했다.
조직의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활성화됐다.
현장경영도 백 사장이 말하는 법정관리인의 덕목 중 하나다.
"책상에 앉아서 숫자만 챙기다 보면 CEO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설명.그는 "6년 동안 500여곳의 대리점을 직접 찾아다녔더니 회사와 품질의 문제점이 한눈에 보이더라"며 "법정관리인이라도 현장을 뛰어다녀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 사장은 후임 법정관리인들에게 회사의 성장을 무시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지난해 프랑스 수입 브랜드인 모르간을 들여오는 한편 올해는 자체 브랜드인 조이너스와 꼼빠니아를 중국에 진출시키기로 하는 등 나산의 제2 성장 기반을 다져놓았습니다." 그는 "올 하반기에는 기업인수합병(M&A)을 통해 법정관리를 종결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백 사장은 "6년간 직원들과 힘을 합쳐 회사를 일으켜 세운 만큼 회사의 성장을 지켜보고 싶은 아쉬움도 있다"며 "하지만 한 사람이 너무 오래 있으면 조직이 정체된다는 생각에 후임자에게 회사를 맡기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38년간 비즈니스맨으로서 앞만 보고 달려왔다"며 "당분간 쉬면서 앞으로의 인생을 구상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서울지방법원은 백 사장의 퇴임에 따라 다음 달부터 나산을 책임질 후임 법정관리인을 고르고 있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