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자인 제이미 폭스는 수상소감에서이렇게 털어놨다. "시드니 포이티어를 만났을 때였어요. 그가 제게 '자네를 한번 봤네… 자네에게 책무를 주겠네'라고 했죠. 덕분에 오늘 이 자리에 서게 됐어요." 한마디의 말이 인생을 축복한 경우거니와 이런 예는 수없이 많다. 거꾸로 말 한마디가 돌이킬 길 없는 재앙을 부르는 일도 잦다. 학교폭력을 다룬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우식이 난투극 끝에 퇴학당하는 게 어머니의 출신을 들먹인 종훈의 비아냥 탓인 것처럼, 끔찍한 범죄와 자살의 원인을 들춰보면 주위에서 받은 비난과 무시 조롱 같은 말이 자리한 수가 흔하다. 실제 언어폭력을 당하면 물리적·성적 학대를 당했을 때처럼 좌·우뇌의 연결부분이 손상돼 일반 불안감은 물론 극단적인 자살충동 위험까지 높아진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너 바보지" "할 줄 아는 게 뭐야" "어째 형처럼 못하니" 등으로 무시당한 학생들을 조사했더니 초조함과 우울증에 시달렸다는 것이다. 언어폭력의 종류는 여러 가지다. 별명 부르며 놀리기, 악의적 소문 퍼뜨리기, 빈정거림과 조롱 욕설,휴대전화나 e메일을 통한 협박이나 비난 위협 등. 신체적 약점을 우스개로 만드는 것도 엄청난 폭력이다. 그런데도 국내 TV방송에선 특정인에 대해 '공포의 삼겹살' 같은 별명을 붙이곤 즐거워한다. 최전방 부대에서 벌어진 총기난사 사건의 원인이 모욕적인 말이었다는 소식은 언어폭력의 한계와 위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중고생들의 상당수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친구와 비교당하거나 구제불능이라는 식의 인격적 모욕을 받는 것보다 차라리 한 대 맞는 게 낫다고 말하는 데서 보듯 언어폭력의 상처는 재기 어렵다. 언어폭력의 문제는 신체적 폭력과 달리 흔적이 남지 않고 사람에 따라 받아들이는 정도가 달라 예방과 치유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관행이나 농담으로 이뤄진 것이라도 듣는 사람이 대수롭게 여기지 않고 가슴에 새기면 아무도 예상할 수 없는 무서운 결과를 부를 수 있다. 새삼 말의 힘에 주목하는 건 그때문이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