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이 한 발 걸치면서


창틀을 타고 넘어와


거실 한편에 발을 뻗는다


다정하다


집사람 친구가 분양해준


관음죽 새순이 달빛에 입맛을 다신다


지난 봄에 갔던 소백산이


달 표면에 어른거리고


재잘대던 물소리도 들려온다


거실을 횡단하던 바퀴벌레가


달빛에 걸려 오래 헛바퀴를 돈다


해골 속으로 먹어들어 오는


달빛의 느린 속도가 보인다


-----------------------------------------------------------------


역시 다정하다


- 박세현 '선잠을 깨고 나니' 전문


도대체 맨정신으로 맘 편하게 잠들었던 기억이 까마득하다.

직장에서,거리에서,또는 쉬고 싶어 찾은 휴양지에서 조차 우리는

정글을 헤치듯 숨가쁘게 '생존'해야만 한다.

거만하게 치솟은 아파트 숲을 넘어 거실 한 켠에 숨어든

달빛은 그래서 시인에게 축복이었을 것이다.

적막한 밤,관음죽 새순위에 일렁이는 황홀한 달빛.

고단한 삶을 견디게 하는 것은 우리 일상에 간혹 끼어드는

이런 사소한 축복들 때문이 아닐까.


이정환 문화부장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