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박태준 명예회장의 영웅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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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자네들이 영웅이야."
지난 9일 한국철강협회 창립 30주년 겸 제6회 철의 날 기념식이 열린 포스코센터. 후배들이 철강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정부의 훈.포장을 받는 모습을 지그시 바라보던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은 이렇게 축사를 시작했다.
미리 준비된 원고는 없었다.
그는 저멀리 기억을 더듬어 포항 모래벌판에서 철강산업을 일으켜 세우던 시절부터 들려주었다.
수상으로 들떠있던 기념식장 분위기는 일순 숙연해졌다.
"포스코에서 첫 쇳물이 쏟아져 나오던 게 1973년 6월9일이던가요.
국제 경쟁력을 갖춘 쇳물이 나왔기에 오늘날 조선 자동차 가전산업이 세계적으로 성장했다고 봐요."
박 명예회장은 목이 메는 듯했다.
'산업의 쌀'을 만들어 내기 위해 밤낮 없이 고생하던 동료들을 손으로 가리키며 이름을 부르기도 했다.
"포항제철소 건설 당시 아이들이나 마누라 얼굴 보는 것은 꿈도 못꿨어요.
몇 달씩 집에 들어가지 못했으니까요.
동지들까지 몇 명 잃었고….우리는 그렇게 철강산업을 일으키고 발전시켰어요.
얼마전 일본에 갔더니 일본 제철소들이 포스코에서 배울 게 많아졌다고 하더군요.
포스코 이외 국내 철강업체도 마찬가지예요.
모두 고생고생했지요."
박 명예회장은 다른 산업에 비해 첨단도 아니고 결코 화려하지 않지만 그러나 '소리 없이 세상을 움직인다'는 포스코의 광고카피처럼 제철보국(製鐵報國)의 의지를 굳건히 이어가자고 후배 철강인들에게 당부했다.
"여기에 모인 철강인 여러분 모두가 산업의 쌀을 제공해 온 영웅들입니다.
국내 철강업계가 세계 1위에 오르면 그게 바로 국가에 충성하는 길이에요."
나이 여든을 바라보는 박 명예회장(78)은 10여분을 꼿꼿이 선 채 축사를 이어갔다. 초대 철강협회장을 지냈지만 철강협회 및 철의 날 기념식에 참석한 것은 근래 처음이다. 축사 후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질문공세를 받는 자리에서도 "기회와 시간이 주어진다면 북한에 제3의 제철소를 짓고 싶다"는 염원을 밝혔다.
'식지 않는 용광로'와 같은 철강인, 박태준.후배 철강인들이 그에 못지 않은 영웅담을 후세들에게 전해주길 기대해 본다.
김홍열 산업부 기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