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계좌는 안전합니까.' 지난 3일 인터넷뱅킹 이용자의 컴퓨터가 해킹돼 거액의 예금이 빠져나간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이후 각 은행에는 이같은 문의가 빗발쳤다. 이번 사건은 간단한 해킹 프로그램만 설치하면 다른 사람의 인터넷뱅킹 계좌를 손쉽게 해킹할 수 있음이 확인됐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현재 금융회사에 등록된 인터넷뱅킹 고객 수는 2257만명.우리나라 국민 2명 중 1명꼴로 인터넷 뱅킹을 이용하는 셈이다. 이렇게 일반화된 인터넷뱅킹이 구멍이 뚫려 있었다는 것은 이용자의 불안과 불신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해당 은행은 사건 발표 직후 "이용자가 해킹방지 프로그램을 제대로 설치하지 않은 데 따른 결과"라며 "불법인출 책임은 예금주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금융감독원의 조사 결과, 은행이 사용한 인터넷뱅킹 보안 프로그램에도 문제점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고 결국 해당은행은 피해액을 전액 보상키로 결정했다. 이번 해킹 사고도 '보안 불감증'이 부른 인재(人災)로 판명된 것이다. 특히 이 사고는 한 특정 은행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이번 해킹이 사용자가 자판을 통해 입력한 정보를 그대로 해커의 컴퓨터에 나타나게 해 비밀번호 등을 알아내는 방법을 이용했다는 점에서 키보드 해킹방지 프로그램 설치가 의무화돼 있지 않은 대부분 은행도 사고 가능성을 안고 있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매매와 이체 등 각종 거래에서 온라인이 주채널로 돼있는 증권사도 안전지대는 아니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은 인터넷뱅킹 시스템만이 아니었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전자금융거래에 대한 법적 공백현상도 드러났다. 인터넷뱅킹과 온라인 주식거래 등 전자금융거래가 급격히 확산됨에 따라 각종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고 거래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추진된 '전자금융거래법' 제정안이 국회에서 난항 중이다. 정부와 국회도 이번 사고를 방조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이번 사고가 우리나라 전자금융 시스템에 내재된 총체적인 부실의 단면이란 지적은 그래서 나온다. 유병연 금융부 기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