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신문은 최근 전 세계적인 열풍을 몰고 있는 '블루오션 전략(Blue Ocean Strategy)'과 '가치혁신(Value Innovation)론'을 소개,전파하기 위해 '한경 가치혁신포럼'을 마련했다. 지난 3월 처음 시작한 한경가치혁신포럼은 가치혁신적인 사고와 방법론으로 블루오션을 개척한 우리 기업의 사례를 발굴,소개할 계획이다.


'한경 가치혁신포럼'의 두 번째 주인공은 이노디자인이다.


이 회사는 레인콤의 MP3플레이어 '아이리버',삼성 휴대폰 '애니콜'의 디자인을 맡아 이 상품들을 세계적인 반열에 올렸다.


31일 오후 한국경제신문사 다산홀에서 열린 제2회 한경 가치혁신포럼에선 세계적인 디자인너 김영세 이노디자인 사장이 나와 아이리버와 애니콜의 디자인 혁신 사례를 직접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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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디자인 김영세 사장이 디자인과 디자이너를 바라보는 관점은 독특하다.


그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예술가와 과학자의 모습을 동시에 지향한다.


'디자인=장식미술'이라는 통념을 거부한다.


그가 생각하는 디자인은 보기 좋고 쓰기 편하며 또 만들기도 쉬워서 가격 경쟁력까지 갖춘 상품을 창조하는 행위다.


한마디로 '디자인=혁신(innovation)'이라는 것이다.


특히 고객의 가치향상과 원가절감을 동시에 추구한다는 점에선 가치혁신과 맥락을 같이한다.


디자인에 대한 이런 관점의 차이가 가져온 성과는 경이롭다.


이노디자인이 디자인을 전담한 레인콤의 MP3플레이어 아이리버는 현재까지 650만개 이상 팔렸다.


99년 12억원에 불과했던 아이리버의 매출은 지난해 4540억원으로 급증했다.


이 제품의 성공요인을 꼽을 때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게 바로 디자인이다.


특히 '아이리버 H10'의 경우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이 격찬해 더 유명해졌다.


유럽시장을 겨냥해 출시된 삼성전자의 휴대폰 애니콜 SGH C-100 모델은 출시 이후 판매가 가파르게 늘면서 베스트셀러 휴대폰 반열에 올라섰다.


세계 디자인업계에서 아카데미상으로 일컬어지는 IDEA 금.은.동상도 모두 받아 명실공히 세계적 디자이너가 된 김 사장의 디자인 철학은 디자인을 보는 새로운 시각과 방법론들로 구체화되고 있다.


모두 가치혁신의 논리와 큰 흐름을 같이한다.


대표적인 게 '디자인을 통한 가치혁신(value innovation by design)'이다.


지난해 초 시작된 한경의 가치혁신 시리즈에서 힌트를 얻어 정립한 논리다.


경쟁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아이디어로 제품의 가치를 지속적으로 높여야만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으며 이를 가능하게 만드는 방법 중 하나가 디자인이라는 설명이다.


디자인을 통해 경쟁 없는 시장인 블루오션을 창출할 수 있다는 시각이다.


디자인을 수행하는 절차도 가치혁신적이다.


디자이너가 먼저 상품의 컨셉트를 고객사에 제안하는 방식인 '블랙박스'가 대표적이다.


고객사가 던져주는 제품 사양에 따라 외관을 장식하는 데 치중하는 기존 프로세스와는 정반대다.


전략을 수립할 때 가격,비용보다 구매자가 느끼는 효용성부터 먼저 고려해야 한다는 블루오션 전략의 수립절차와 같은 맥락이다.


아이리버 프리즘은 디자인 퍼스트 이론을 적용해 성공을 거둔 좋은 예다.


레인콤 엔지니어들이 이노디자인이 제안한 샘플에 따라 부품을 배치하는 데 어려움을 호소하자 경영진이 "꾸겨 넣어!"라며 밀어붙인 것은 유명한 일화다.


김 사장이 생각하는 성공적인 디자인의 기준은 간단하다.


소비자들이 제품을 보고 "왜 이런 생각을 못 했을까"라고 탄식을 자아내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준이 다르다 보니 접근방식도 다르다.


흔히 디자인 회사들이 시장조사할 때 사용하는 포커스그룹 인터뷰를 신뢰하지 않는다.


원하는 해답을 소비자들이 늘 갖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대신 소비자들을 관찰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지난해 출시된 이후 최근까지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아이리버의 목걸이 타입 MP3플레이어(N10)는 그렇게 탄생했다.


목걸이와 이어폰을 따로 주렁주렁 걸고 다니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목걸이에서 이어폰이 바로 빠져 나오면 안 될까'라는 착상을 한 게 아이리버 N10의 시작이었다.


'디자인으로 풀어가는 입체경영' 개념도 가치혁신적인 면모를 잘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신제품 디자인 회의를 할 때는 디자인 담당 임원뿐 아니라 마케팅,기술,생산,재무 담당임원까지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래야만 CEO가 디자인을 중심에 놓고 각 분야의 연결고리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노디자인에서도 컨설팅을 맡게 될 때 전 디자이너가 고객사의 공장을 방문한다.


제대로 된 디자인은 생산비용까지 절감시켜야 한다는 철학에서 나온 방침이다.


김 사장은 최근 '사랑으로 출발하라'는 디자인 철학에 빠져 있다.


자신이 디자인한 상품 이용자들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낼 수 있고 그 결과는 틀림없이 히트상품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다.


이노디자인을 창업한 이후 20년간의 실전 경험은 기술(技術),상술(商術)을 넘어 이제 인술(人術)로 수렴되고 있다.


송대섭 기자 dss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