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선이 드러나거나 무릎 위로 올라오는 옷은 상상도 못하는 북한에서 민소매 니트,미니스커트 차림의 모델들을 세우겠다고 하니 다들 말리더군요.하지만 전세계의 이목을 개성공단으로 끌어들이는 데 패션쇼만한 것이 없다고 판단하고 밀어붙였습니다.앞으로도 1년에 한 번씩은 꼭 패션쇼를 열 생각입니다."


황해도 개성공단에서 26일 패션쇼를 개최한 신원의 박성철 회장(65)은 "지난해 10월 개성공단 착공식 후 꾸진히 추진했던 행사가 드디어 결실을 맺게 됐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피복전시회(북한에서 부르는 패션쇼) 행사는 국내 의류업체로서는 처음으로 북측에 여성복 남성복 캐주얼 등 기성복을 선보이는 자리였다.


지난 1월 개성공장을 완공한 신원은 당초 2월 본격적인 제품 생산을 앞둔 시점에 준공식을 겸한 패션쇼를 열려고 했지만 두 차례나 행사가 연기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몸매가 드러나는 옷차림을 천박하게 여기는 북측 인사들에게 '미풍양속'(?)을 해치는 서양식 옷으로 패션쇼를 열겠다고 하니 쉽게 허가가 떨어질 리 만무했지요.


처음부터 각오는 했지만 자꾸만 행사가 연기돼 속이 다 타들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옷 만드는 회사가 제품을 고객에게 선보이는 패션쇼를 여는 것은 당연한 의무라며 직원들을 독려했지요.


개성공단에 입주한 유일한 의류 기업으로서 패션 문화가 전무한 북한에 새로운 문화를 전파해야겠다는 사명감도 있었고요.


다행히 패션쇼도 무사히 진행됐고 북측에서 이례적으로 CNN 로이터 UPI AP AFP 등 5대 외신에까지 초청장을 발급해 전세계가 주목하는 행사가 됐습니다.


남북 화합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한 것 같아 뿌듯하기 그지없습니다."


박 회장이 북한에 처음으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지난 95년 평양에서 스웨터 재킷 등 일부 수출 제품을 임가공 생산하면서부터다.


당시 임가공은 2년 정도밖에 하지 않았지만 북한의 값싼 노동력과 우수한 손기술,지리적 이점 등을 눈여겨봤다고. 박 회장은 "중국 베트남 과테말라 인도네시아 등 신원의 해외 공장 어느곳과 비교해도 개성공장 북한 노동자들의 수준이 가장 뛰어나다"며 "제품 생산 4개월 만인 지난달 이미 손익분기점을 넘어섰을 정도"라고 말했다. 신원은 현재 5개 생산라인에서 일평균 600장의 제품을 생산중이며 지난 3월부터 '메이드 인 개성'제품을 남측에 들여와 판매중이다.


박 회장은 "이번 패션쇼에는 아쉽게도 공장에서 일하는 북측 근로자나 일반 주민들은 참석하지 못했다"며 "언젠가 북한 주민들 앞에서도 당당히 패션쇼를 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개성=이방실 기자 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