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 논설위원 겸 경제교육연구소장 > 한경은 어제부터 "왜 공무원인가"라는 타이틀로 연재 기사를 싣고 있다. 어제 날짜 시리즈 1회의 제목은 '그래도 무풍지대',오늘자 2회는 '공직이라면 3D 업종도 좋다'이다. 참여정부 공무원에 대한 현장 보고서다. 때마침 어제부터 정부는 '정부 혁신 세계 포럼'을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고 있다. "굿 거버넌스를 지향한다"는 따위의 자화자찬이 이어지는 말의 성찬이다. 초대받아 온 외국 분들이 굳이 쓴 말을 할리야 없을 테니 성공사례는 잇달아 무대에 오르고 중 제머리 깎는 공치사도 이어진다. 참으로 공교로운 타이밍이다. 공직의 철밥통을 고발하는 기사와 정부 혁신의 쏟아지는 격려사가 과연 어울릴 만한 것인지부터 잘 모르겠다. 한경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포럼을 주관하는 실무자들에게 우선 미안한 일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공무원이 이렇게 좋은 줄 알았다면 나도 결사적으로 고시공부했을 것"이라며 후회하는 사람이 줄을 잇고 있고 수십만 대학생들이 각종 국가시험에 패스하기 위해 골머리를 싸매는 상황에서 이 정부는 과연 무엇을 근거로 혁신을 말하고 있는 것인지 배짱 한번 두둑하다고 할 밖엔 도리가 없다. 대통령 직속으로 정부혁신위원회를 두고 각 부처에 혁신 담당관을 설치하며 날밤을 새며 길고 긴 혁신회의를 거듭하는 것으로 "우리는 혁신하고 있다"고 말하려는 참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행자부가 팀제로 전환되고 과장이 국장 보임을 맡는 일이 생겼다고 해서 정부는 과연 혁신 모델을 찾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역시 아니올시다이다. 철밥통에, 낙하산에, 불어나는 공무원 숫자에, 늘어나는 장.차관 감투를 놓고 공직과 정부가 혁신되었노라고 말할 수는 결코 없다. 권력은 무게를 더해가고 조직은 날마다 비대해지는 이런 공직 천국의 시대에 혁신을 말한다면 그것은 진실의 호도요, 사실의 기만이다. 부총리가 몇명까지 불어날지 모를 상황이고 내각은 팀제의 그물에 걸려 작동에 애로를 겪고 있는데다 장관들은 서로 영업구역(?)을 다투며, 쏟아지는 복수 차관 자리를 놓고 유력자들이 혈전을 벌이는 이 '공직 천하지대본' 시대에 정부 혁신이라니 포럼에 참여한 룰라 대통령이 혹여 배를 흔들며 웃지나 않을지…. 단순히 공무원 숫자가 늘어나고 있는 것을 탓하자는 것은 아니다. 기왕에 복지 국가와 분배 정의를 전면에 내세웠던 터였으니 까짓 큰 정부에 공무원 숫자가 좀 늘었기로 탓할 일만은 아니다. 턱없는 이념이지만 그것대로 역할과 기능이 있을 것이고 또 공복이라는 말에 걸맞게 운영만 잘한다면 적잖은 도움도 될 것이다. 과연 돌아가는 모양새가 그러한가. 역시 천만의 만만의 말씀이다. 개혁의 대상을 소위 개혁의 동맹군으로 만들어 놓았으니 정부 권력은 더욱 커지고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것도 자연스런 결과다. 검찰 수사권 논란도 정치검사를 애용한 저간의 필연적 결과에 다름 아닐 것이어서 누구든 신세를 지면 갚아야 하는 것이 이치다. 더구나 개혁의 깃발만 세우면 못할 것이 없으니-예를 들어 공정위의 사법권 논란이 그렇다-온갖 그럴싸한 구실을 붙여 공직자의 문전옥답 가꾸기는 이 시절 만한 때도 없다. "위에선 정책을 만들어라.밑에선 대책을 만든다"고 작정하고 나선다면 혁신을 독려하는 정권의 임기는 너무 짧고 공무원의 직업 수명은 너무 길다. 그래서 개혁된 것이 없기로 따지면 이중삼중의 경제부처들도 다를 것이 없고 이익 단체들(시민단체도 포함된다)까지 등에 업고 있는 사회부처들은 더욱 그렇다. 그러니 혁신은커녕 공무원 만세를 불러도 모자랄 지경이 되고 만다. 역시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기 때문이다. 국민을 개혁하기로 드는 상황에서 봉사하는 정부란 설자리가 없다. 누가 누구를 개혁하려는 것인지도 불명이다. 공공부문이 민간부문을 개혁하려 드는 도착적 구조 아래 정부 효율성을 거론한다면 자다가 봉창 두드리자는 것이 되고 만다. 참여 정부는 언제쯤 세미나를 마치고 진짜 혁신에 나설 것인가.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