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들이 협력사들에 대한 물품대금 지급방식을 어음결제에서 현금결제로 속속 전환하면서 어음 거래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중소기업들도 상생경영 차원에서 어음 주고 받기를 서로 자제하는 분위기다.


이에 따라 어음 할인이나 중개를 통해 돈을 벌어온 사채시장이 된서리를 맞고 있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 LG 현대자동차 SK 포스코 등 대기업들이 중소 협력업체의 납품대금을 현금으로 지급하는 사례가 크게 늘어나면서 이들 대기업의 협력사들도 2차,3차 협력업체들에 어음 대신 현금결제를 확대하고 있다.


SK텔레콤 포스코 삼성전자가 이미 중소 협력사에 대한 납품대금을 100% 현금으로 결제하고 있는 데 이어 LG전자도 6월부터 전액 현금결제 방식을 도입키로 했다.


협력사의 납품물량이 다른 기업에 비해 월등히 많은 현대.기아자동차도 현금결제 비중을 높이고 있다.


LG전자에 연간 600억원 규모의 휴대폰케이스를 납품하고 있는 우성M&P의 박찬호 사장은 "원청업체인 LG전자가 다음달부터 현금결제 방식을 도입키로 함에 따라 우리 회사도 20여개 협력사들에 대한 대금결제기간을 현행 60일에서 30일로 단축하고 어음 거래도 없앨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 3월부터 전액 현금결제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삼성전자에 금형제품 등을 공급하고 있는 에이텍솔루션도 마찬가지. 이 회사의 유영목 사장은 "삼성이 어음을 지급하지 않으면서 연간 2억원 정도의 어음 할인 비용을 줄일 수 있게 됐다"며 "현재 30여개 부품가공업체에 60일짜리 어음을 끊어주고 있으나 앞으로는 일부 현금결제 방식을 도입하면서 어음 만기도 45일로 재조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기업과 안정적인 거래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중소기업들 사이에선 대기업-중소기업 간 상생경영 못지 않게 중소기업 간 상생경영도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휴대폰 제조업체 터보테크의 이동훈 사장은 "지난 16일 청와대에서 열렸던 '상생 간담회'가 업계의 결제관행을 바꾸는 전환점이 되고 있는 것 같다"며 "1차 협력사보다 자금 사정이 더 어려운 재하청업체들에도 상생경영의 혜택이 돌아가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는 이 같은 관행 변화에 따라 어음결제 규모가 더욱 빠른 속도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현재 하루 평균 어음결제 금액은 7조원 정도로 지난 2002년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든 상태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사채시장이 가장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어음을 액면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매입한 뒤 만기에 현금으로 바꾸거나 아니면 만기 전에 수수료를 챙기고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어음 할인(속칭 와리깡)업은 유통 어음이 사라지면서 고사 위기를 맞고 있다.


서울 명동에서 30년간 어음 할인을 해 왔다는 한 사채업자는 "지난 3~4년 새 우량기업 어음은 시장에서 씨가 마를 정도로 '어음 가뭄 현상'을 겪고 있다"며 "살아남기 위해선 그나마 수요가 있는 상품권 할인에 주력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때 어음 할인으로 재미를 봤던 저축은행들도 발을 빼고 있다. 금융계 관계자는 "어음이 수익원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면서 무수익채권(NPL) 등 다른 금융상품에 눈을 돌리고 있다"며 "대기업들이 현금결제 방식을 도입하는 속도가 예상보다 빨라 당황스럽다"고 전했다.


조일훈.유병연.송종현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