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영변 원자로의 가동 중단, `6월 핵실험설', 그리고 단거리 미사일 동해 발사 등에도 불구, 북핵 문제에 관해 낙관도 비관도 않은 채 비교적 냉정한 자세를 취해오던 우리 정부 마저도 점차로 비관적 전망 쪽으로 기울고 있는 모양새다.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은 4일 내외신 정례브리핑에서 "현 상황은 북핵 문제의 평화적, 외교적 해결과정에서 중대한 국면"이라며 "북한이 추구하는 바가 뭔지 국제사회의 우려가 증대하고 있고, 북한은 회담이 개최되지 않고 있는 현 상황이 무작정 지속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그는 이어 "최근 전개되고 있는 여러 상황이 상당히 우려할 만한 정도로 발전하고 있고 6자회담의 재개 전망도 밝지 않다"며 "정부로서는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든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상황을 심각하게 본다는 얘기다. 반 장관이 물론 6자회담 재개를 통한 평화적.외교적 해결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거듭 밝혔지만, 현 상황에 대한 평가에는 비관적 색채가 더 짙어 보인다.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반 장관은 북한에게 `할 말은 하는' 자세를 보였다. 그는 북한에 대한 자극을 삼가면서도 "북한의 비타협적이고 비현실적인 주장으로 6자회담이 재개되지 않고 있다" "타당성 없는 주장에 매달리지 마라" "북한이 현실을 직시하고 전략적 결단을 내려야 한다" 등 북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의 이날 발언 중에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둔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는 대목이다. 그동안 미.일 양국의 대북 강경세력들을 중심으로 북핵 문제의 유엔 안보리 회부 및 대북 제재 가능성이 흘러나올 때마다, "지금은 그런 얘기를 할 때가 아니다"라고 일축했던 지금까지의 입장과는 상당히 다른 뉘앙스를 풍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이날 발언을 전반적으로 살펴보면, 현재 중국 매개로 진행되고 있는 북-미간 간접협상이 별다른 진척이 없고, 특히 북한이 `핵무기 포기'라는 전략적 결단을 내리지 않고 있음으로써 관련국들의 인내심이 고갈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관련, 현재 뉴욕에서 진행 중인 핵무기비확산조약(NPT) 평가회의에서 북핵 문제가 어떻게 다뤄지느냐와 함께, 6∼7일 일본 쿄토에서 열릴 ASEM(아시아유럽정상회의) 외무장관회의와 그 기간에 진행될 한ㆍ중, 한ㆍ일 외교장관회의와 한ㆍ중ㆍ일 3자위원회에서 북핵 문제와 관련해 어떤 의견이 오갈 지도 주목된다. 부시 미 행정부에서도 북한을 겨냥해 파상공세를 한층 강화하고 있다. 그동안 북한을 설득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데서 벗어나 점차 `한 번 해볼테면해보라'는 식의 대북 강경자세가 두드러지고 있는 듯한 인상이다. 부시 대통령이 지난 달 28일(이하 현지시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위험한 사람" "폭군" "주민을 굶긴다" "위협하고 허풍떤다"고 비난하고 5개국 동의를 전제로 북핵 문제의 안보리 회부 가능성을 밝힌 것을 시작으로 미 행정부 고위관리들이 줄줄이 나서 북한을 겨냥해 집중적인 공세를 펴고 있는 것이다. 앤드루 카드 백악관 비서실장이 1일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시험발사 사실을 확인하면서 "북한은 깡패같은 행동을 하면 세계 다른 나라들이 우러러 봐줄 줄 알지만 (깡패는) 별로 건설적인 지도자가 아니다"라고 말했고,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미국은 아시아태평양지역에 모든 종류의 `실질적인'(significant) 억지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해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고 있음을 분명히 하고 나섰다. 2일 스콧 맥클렐런 백악관 대변인이 "북한은 회담에 복귀해야 하며 그 것만이 북한이 해결을 추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했으나, 다른 한편에서는 리처드 마이어스 합참의장이 3일 북한이 남한을 침공한다면 한미 연합군이 승리할 것이라고 말하고, 데이비드 고든 미 국가정보위원회(NIC) 위원장도 "북한은 김정일이 권좌에 있는 한 변함없이 매우 우려스러운 국가가 될 것"이라고 강성발언을 이어갔다. 이와 관련, 정부 당국자는 "중국을 통해 북한을 계속 설득하고는 있지만 상황이 그다지 좋지 않다"며 "그다지 머지 않은 시기에 6자회담 재개를 계속 추진할 지 여부에 대해 판단을 내려야 하는 시점이 다가올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최근 일련의 상황전개를 평양 당국이 어떻게 보고 어떤 선택을 할 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서울=연합뉴스) 이 유 기자 ly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