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국선 < 서울대 산학협력단장ㆍ재료공학부 교수 > 최근 기업의 핵심기술이 외국으로 불법 유출되는 사건이 심심치 않게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그게 사실일까 반신반의하면서도 이제 우리 기술수준이 상당히 높아졌구나 하는 뿌듯한 생각이 든다. 선진국에서 구걸하디시피 얻어온 기술로 제품을 만들고 살아온 지난 시절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남들이 탐낼만한 몇 안되는 우리 기술들이 외국으로 다 빠져나가면 큰일인데 하는 착잡한 마음이 더 앞선다. 얼마전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발표한 ‘2004년 세계경쟁력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기술경쟁력은 조사대상 1백2개국 가운데 미국 일본 등에 이어 6위에 기록되었고, 51개국을 대상으로 분석한「IMD(국제경영개발원) 보고서」에서는 우리나라 기술 인프라가 2003년 27위에서 2004년 8위로 상승하였다. 또한 경제성장에 맞추어 연구개발(R&D) 규모도 98년 11조원에서 2003년 19조원으로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이다. 그러나 차세대 성장동력 분야의 R&D 투자도 중요하지만 개발된 첨단기술을 보호하려는 노력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R&D 성과는 우리의 지적재산으로 일부는 특허 등 산업재산권으로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지만 대부분은 노하우로서 연구자의 지식으로 남게 된다. 세계는 지금 총성 없는 지적재산권 전쟁중이다.시장을 선점하고 자사 제품을 보호하기 위한 기업간의 싸움은 이제 무한경쟁시대 속에서 글로벌화 양상을 띠면서 자국 기업을 보호하기 위한 국가간 전쟁으로 비화하고 있다.지적재산권은 복제품 범람에 따른 시장교란을 방지하고 경쟁사의 시장 진입을 억제하기 위한 전략적 수단으로 광범위하게 이용되고 있다.최근 시장이 개방되고 국가간 자유무역이 활성화되면서 선진국의 무차별한 지적재산권 공세는 우리 기업을 황폐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이런 와중에서 우리는 원천특허를 보유한 선진국의 특허공세와 함께 경쟁국으로의 기술유출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가 지적재산권이나 기술유출의 무풍지대에 머물 수 있었던 까닭은 경제규모가 작고 기술도입을 통한 단순 조립 수준에 머물렀기 때문이다.하지만 이제 무역규모가 세계 10위권에 들고 세계 일류기업이 속속 나오면서 우리나라도 이제 지적재산권 전쟁의 치열한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다. 최근 정부는 국가핵심기술을 보호하고 불법유출을 막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지원에 관한 법률(안)’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은 자신의 이익을 침해하는 불법 기술유출에 대한 법적 장치를 크게 환영하는 한편으로 자칫 이러한 규제가 기업의 부담과 비용을 증가시키거나 사적인 계약과 분쟁해결에 정부가 개입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한편 과학기술계에서는 불법 기술유출이 잘못된 윤리의식 탓이라고 보면서도 연구원들의 정당한 보상이나 처우가 미비한 현실에서 이 법이 과연 실효성이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특히 연구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해 감시를 정당화하고 이직과 전직을 제한하는 ‘과학기술계의 국가보안법’이라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외환위기와 구조조정을 겪으면서 직업 개념은 평생직장에서 평생직업으로 바뀌고 있다. 재직중 개발한 기술과 노하우로 몸값을 올려 이직에 대비하는 것은 연구원들에게 생존이 걸린 문제다. 법 취지는 공감하지만 변화속도에 맞춰 보호대상 기술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범위를 최소화하여 합법적인 기술거래나 인수합병(M&A) 등의 기업 활동이 위축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또한 연구원에 대한 보상과 함께 선의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세심한 준비가 필요하다. 특히 불법 기술유출의 사후 처벌보다는 예방적 차원에서 대학과 중소기업이 보유한 첨단기술을 권리화할 수 있도록 재정적 지원이 선행되어야 한다. 우리 기술을 보호하고 불법유출을 방지하자는 데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칫 기업활동을 위축시키고 연구원의 사기저하는 물론 본의 아니게 전직을 제한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법이 제정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