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환 < 동국대 교수·북한학 > 지난 2월10일 북한이 외무성 성명을 통해 핵보유와 6자회담 불참을 선언한 이후 한반도정세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3차 6자회담 개최 이후 협상이 1년 가까이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인내의 한계론에 따라 '6월 위기설'이 나오고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넷판이 지난 22일 '북한의 핵실험 준비설'을 보도하자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긴장감이 감돌았고,미국 증시가 한때 출렁거렸다. 북핵 상황이 악화할 경우 겨우 회복기로 들어선 한국 경제와 대외신인도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6자회담 미국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지난 23일 "5개국이 회담을 원하고 한 나라(북한)만 참가를 거부하는 상황에서 북핵문제를 이렇게 아니면 저렇게라도 풀어야 한다"고 밝혀 유엔안보리 회부 가능성을 시사했다. 북한은 핵문제를 유엔안보리에서 취급하는 자체가 '선전포고'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미국이 이라크 대량살상무기(WMD) 개발문제를 안보리에 회부해 사찰을 한 후,무력침공을 통해 사담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렸지만 WMD를 발견하지 못했던 예에서 북한은 '부정적 교훈'을 찾고 있는 것이다. 북한이 작년 9월 4차회담에 나오지 않은 것은 11월의 미국 대선 결과를 지켜보자는 의도와 함께 미국이 3차회담에서 '건설적 제안'을 한 직후 북한 체제전환을 노린 북한인권법 제정을 추진한 데 크게 반발한 때문이다. 북한은 미국이 제기하는 핵과 인권문제를 '고립압살정책의 2개 기둥'으로 인식하고 있다. 미 대선 이후 북한은 미국이 대북 적대정책을 철회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부시 2기 정권은 오히려 북한을 '폭정의 전초기지'로 지칭하면서 '자유의 확산'을 표방했다. 그 결과 북한은 외무성 성명을 통해 핵보유 선언과 6자회담 불참이라는 '위험한 승부수'를 던진 것으로 보인다. 핵보유 선언은 북한이 말로 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위기조성 전술이다. 핵실험과 핵물질 이전 등 '행동으로 하는' 전술을 구사할 경우 북한은 안보리의 제재조치는 물론 중국 한국 등의 지원이 어려워지게 돼 생존 자체를 위협받을 수 있다. 중국과 한국은 미국이 핵문제와 인권문제를 동시에 제기하고 안과 밖으로 압력을 가하는 상황에서 압력 조절장치 역할을 하고 있다. 일련의 정책전환 실패에 따라 북한 지도부의 리더십 위기 조짐이 보이는 상황에서 북한이 핵문제를 조기에 해결하지 못하고 상황을 악화시킬 경우 '내부폭발(implosion)'로 이어질 수도 있다. 북한은 지금 ① 외부지원을 전제로 2002년 7월부터 시작한 계획경제 관리개선조치의 성과 미흡, ② 2002년 9월 북·일 국교정상화를 위한 정상회담에서 일본인 납치를 시인한 이후 양국간 갈등 심화, ③ 북·미 적대관계 해소를 위한 미국특사 수용과 '새로운 핵개발 계획 시인'에 따른 국제사회와의 갈등, ④ 내부자원의 고갈과 WMD확산방지구상(PSI) 등 외부감시의 강화에 따라 경제위기는 물론 체제의 위기도 심화되고 있다. 2차 북핵위기가 발생한 지 2년6개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북핵문제는 아직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북핵문제와 연계돼 남북관계도 정체에 빠졌다. 북한과 미국은 2002년 10월 2차 북핵위기 발생 이후 지금까지 서로 마주보고 달리는 열차처럼 겁쟁이게임(chicken game)을 해왔다. 북한은 핵능력을 과장하고 '말로 하는' 위기전술을 구사하면서 마지막 카드인 핵보유 선언까지 빼들었다. 반면 미국은 북한의 핵능력에 대해 때론 과장하고 때론 무시하면서 리비아모델에 따른 선(先) 핵포기를 요구하고 있다. 핵보유 선언의 의도가 북한 최고지도자의 말을 통해 확인된 이상 미국도 북한의 '진의'를 믿고 협상에 나서야 할 것이다. 북핵문제는 '북·미 적대관계의 산물'이기 때문에 양국이 공존에 기초한 협상을 추진하지 않는 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어렵다. 미국과 국제사회는 북한이 국제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는 기회를 한번 더 주고, 북한도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