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인생] 암전이 억제유전자 발견 백성희 서울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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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세포가 혈관을 따라 끊임없이 다른 장기로 이동하기 때문에 완치가 어려웠습니다. 이번에 암전이 억제 유전자의 기능이 밝혀짐에 따라 암 완치율을 90% 이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전기가 마련된 것이지요."
최근 동물실험을 통해 'KAI1' 유전자가 베타카테닌 및 Tip60 단백질과 작용해 암의 전이를 억제한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밝혀낸 백성희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35)는 "암세포에만 선택적으로 작용하는 암전이 억제제를 개발할 수 있는 길이 이번 연구를 통해 열렸다"고 말했다.
백 교수는 "KAI1 유전자는 그동안 암전이를 억제한다고 추정해 왔으나 그 작용원리가 밝혀지진 않았다"며 "암에 걸린 쥐를 대상으로 실험을 한 결과 암전이 단계에서는 베타카테닌 단백질이 증가하고 Tip60 단백질은 줄어들어 KAI1 유전자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규명했다"고 설명했다. 백 교수의 연구결과는 세계적인 과학전문지 '네이처'에 최근 발표됐다.
백 교수가 KAI1 유전자 연구에 나선 것은 미국 유학길에서 돌아온 지난 2003년부터다. 그는 원래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에서 연구교수로 활동하면서 치매와 염증반응 유전자를 주로 연구했다. 관련 연구로 '셀'지 등 세계적 저널에 발표한 논문만도 20여편에 달했다. 하지만 그는 한국에서 연구방향을 암관련 유전자로 돌려야 했다. 당시 연구비를 따낼 수 있는 연구과제가 암에 한정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받은 연구비도 1억여원에 불과했다.
"세포배양기 등 기초장비 5~6개를 사고나니 남는 것이 없더군요. 부족한 장비는 할 수 없이 외상으로 구입해야 했답니다."
연구시설도 열악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는 "동물실험실이 너무 지저분해 암에 걸린 쥐들의 증세가 악화되는 것이 실험 때문인지,위생문제 때문인지 헷갈렸을 정도"였다고 털어놨다.
이렇게 어려운 연구여건 속에서도 네이처가 인정한 연구성과를 낸 것은 우수한 제자들이 연구에 참여했기 때문이라고 백 교수는 공을 돌렸다. 그는 "한국 학생들이 똑똑하면서도 미국 학생들에게는 찾아보기 힘든 '헝그리 정신'까지 갖추고 있다"며 "세계 어느 대학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톱클래스 수준"이라고 치켜세웠다.
백 교수의 꿈은 앞으로도 선진국에 뒤지지 않는 연구성과를 내 제자들의 본보기가 되는 것이다. 우수한 교수들이 한국에 많이 있다면 학생들이 굳이 먼 외국까지 유학을 갈 필요가 없을 거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는 "한국의 우수한 학생들이 어려운 여건하에서도 상처받지않고 묵묵히 연구를 지속할 수 있도록 힘이 되고 싶다"며 "정부에서도 우수인력이 해외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배려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