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2 22:37
수정2006.04.02 22:40
김정산 < 소설가 >
나는 불효자다.
창을 때리는 빗소리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래 너는 불효자다.
빗방울은 천상에서 쏟아붓는 수천 개의 책망과 질타가 되어 고통스럽게 나를 벌한다.
어머니는 10년 가량 치매를 앓았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때로는 위로가 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새삼 가슴이 미어지고 자책과 비애가 밤을 적신다.
벌써 며칠째인지 모른다.
낙산사가 불에 탔다는 소식을 듣던 날부터 긴 불면의 밤들이 이어진다.
이 비가 며칠만 먼저 내렸다면 나는 불효자가 아닐 수 있었을까?
어머니는 낙산사 경내에 접어들자 갑자기 정신이 돌아오는 듯했다.
홍예루를 지날 때부터 눈망울에 초롱꽃 같은 생기가 감돌고 표정이 아기처럼 환히 밝아졌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나는 어머니가 돌아온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 무렵 나는 어머니를 애인처럼 차에 태우고 틈만 나면 전국을 돌아다녔다.
당신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나 자신을 위한 영악한 자구책이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돌아가신 뒤에 너무 후회가 클 것 같았다.
몇해 전 4월 이맘때, 7번 국도를 따라 동해안을 순행하다가 표지판을 따라 올라갔던 오봉산 낙산사에서 어머니는 경내에 가득 핀 봄꽃 향기에 취해 가만히 손뼉을 쳤다.
아름답구나 얘야.
담을 돌아가며 배롱나무, 만개한 목련꽃 벚꽃 밑에서 꽃이 먼저 웃었는지 어머니가 먼저 웃었는지 모른다.
유난히 포근하고 아늑한 느낌을 주었던 원통보전 댓돌에 노란 봄볕이 아른거리고 불전의 향내가 꽃향기와 더불어 천지에 진동했다.
등 하나 다시지요.
초파일을 앞두고 법당에 걸리기 시작한 연등 밑에서 승복 차림의 여인이 권했다.
등을 달면 어머니 병이 나을까요.
그런 우문(愚問)을 떠올리는 사이 어머니는 슬그머니 내 팔을 잡아당겼다.
한 푼이라도 아끼라는 무언의 만류임을 내가 왜 모르겠는가.
무심결에 당신을 부축해 얼마만큼 걸어왔을 때 별안간 뇌리를 스친 건 조금 전 어머니가 내 팔을 잡아끈 놀라운 행동이었다.
그제야 나는 다급히 어머니를 상대로 몇 가지 사실을 확인해봤다.
과연 당신의 기억력은 오롯하게 돌아와 있었다.
보타전을 거쳐 제법 먼 길인 의상대와 홍련암까지 둘러보는 내내 어머니는 모처럼 되찾은 기억과 화사한 봄날 만발한 꽃더미 속에서 한없이 행복해했다.
치매환자도 아주 가끔씩은 기억이 돌아온다.
대개의 경우엔 그래서 더욱 안타깝지만 그날 낙산사에선 어머니도 기쁘고 나도 기뻤다.
필경은 불은(佛恩)이었으리. 의상과 원효의 자취를 더듬고 해수관음을 봉견한 뒤 돌아서 나오다가 나는 어머니를 원통보전 돌층계에 앉혀두고 혼자 다시 법당으로 갔다.
등 하나 달아주세요.
나는 등 값을 내고 어머니와 내 이름을 썼다.
낙산사가 잿더미로 변한 이튿날은 공교롭게도 어머니의 49재일이었다.
마지막 1년 반을 나는 어머니를 모시지 못했다.
요양소의 도움을 받았고 결국엔 임종조차 못한 채 어머니와 헤어지고 말았다.
혼자 사는 처지에 제사음식을 준비할 길이 막막해 조만간 낙산사에 가려고 했다.
그곳이 천년고찰이어서도 아니고 담장이 아름다워서도 아니었다.
원형의 고증과 복원, 문화재적 가치의 유무 따위와도 물론 무관했다.
이유는 오직 하나, 애틋한 추억이 담긴 곳에서 어머니의 제사를 모시고 싶었고, 한평생 사모곡을 부르기엔 낙산사만한 곳이 없을 것 같아서였다.
비단 나 하나만 그럴 것인가?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해마다 철마다 자신만의 귀중한 추억들을 가꾸고 엮어갔으랴.
상실감은 그래서 크고 대상 없는 분노와 슬픔은 그래서 깊다.
아름답구나 얘야.
화사한 꽃 그늘 아래서 해맑게 웃던 어머니를 여의고 전각도 꽃도 추억마저 잃어버린 봄날, 아아 피안 너머로 흔적도 없이 사라진, 그 누구도 복원하지 못할 내 마음의 낙산사!
/대하소설 '삼한지'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