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공학 고교에서의 일이다. 남학생 반에서 교생 실습 나온 여대생의 치마 속을 폰카로 찍어 돌려본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을 접한 부모들의 태도는 둘로 나뉘었다. 아들만 둔 어머니들은 "남학생 반에 들어가면서 바지나 긴 치마를 입지 하필 미니 스커트를 입어가지고"라는 쪽이었고, 딸을 둔 어머니들은 "어떻게 그런 일이"라며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남의 고통에 대한 공감은 고통의 양이 아니라 고통당하는 사람에 대한 연민의 정도에 좌우된다고 하던가. 똑같은 상황도 보는 사람에 따라 시각이 이렇게 다르다. 양성 평등에 대한 생각도 마찬가지다. 직장에서 딸을 둔 남성 상사나 동료들이 아들만 둔 사람보다 남녀 문제에 좀더 공정하다는 얘기를 듣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상반기 직원 선발이 끝나간다. 사법고시 등 공무원 시험의 여성 합격자가 급증하면서 여풍이 거세다는 얘기도 나온다. 사내 결혼으로 부부가 함께 근무하는 수도 적지 않다. 결혼하면 퇴직해야 했던 게 오래된 일이 아니고 보면 격세지감이 든다. 그러나 일하는 여성들의 얘기는 '여풍' 운운과 거리가 멀다. 같은 과정을 거쳐 선발돼 극기 훈련까지 똑같이 받고 시작하는 데도 대놓고 혹은 은근히 각종 차별이 이뤄진다는 얘기다. 업무 분장시 주요 포스트에 배치하지 않거나 생각해주는 척하며 비중 있는 일에서 배제하고, 커피 뽑아오기 등을 으레 여자 몫으로 여긴다고도 한다. 각종 교육에서 성희롱 문제를 다루는 데도 대처하기 난감한 상황에 처하는 일도 잦다는 호소다. 들으라는 듯 큰소리로 내뱉는 음담패설, 친근함을 가장한 스킨십 등. 성희롱은 하는 사람의 의도에 상관없이 당하는 사람이 수치심과 불쾌감을 느끼면 해당된다고 하는데,문제는 언짢다는 표시를 하면 별일 아닌데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식으로 몰아붙이는 수가 있다는 것이다. 여성들의 평균 근속연수가 5년 미만인 것도 이런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는 보고다. 간부가 돼도 처신은 더 힘들다고 한다. 안에선 남자 부하 통솔이나 동료 간부와의 소통이 쉽지 않고 밖에선 여자라는 사실이 한계로 작용하기 일쑤라는 것이다. 미혼이면 좀 낫지만 기혼이면 주부 노릇까지 감당해야 해 사면초가에 몰린다고 털어놓는다. 여성들은 따라서 우리 사회의 양성 평등은 구호에 불과하며 지금처럼 직장과 가정에서의 가시적 혹은 묵시적 차별이 계속되는 한 출산율 제고를 위한 어떤 대책도 효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라고 단정짓는다. 가뜩이나 키우기 힘든데 가정과 일 중 선택하라고 밀어붙이면서 출산율을 높이겠다는 건 어불성설이라는 얘기다. 남성들의 주장은 그러나 좀 다르다. 많은 경영자들이 여성인력 활용의 중요성을 인정하지만 기껏 훈련시켜 놓으면 결혼 육아 등을 이유로 그만두거나 편안한 자리를 원하는 통에 비중 있는 일을 맡기기 겁난다고 한다. 일부지만 평소 회사나 부서 입장에 아랑곳없이 제 주장만 하다가 힘든 일이 생기면 '남성들이 알아서 해주지'라는 태도를 보이면서 필요할 때만 양성평등 타령을 하는 건 곤란하다는 것이다. 평등의 정의를 내리기는 어렵다. 그렇더라도 21세기 세계 강국이 되기 위한 대명제는 확실하다. 남녀의 능력을 최대한 활용하고, 세계 최저로 떨어진 출산율을 높이는 게 그것이다. 그러자면 가정 기업 정부 모두 마지못해 쫓아가는 남녀평등이 아니라 적극적인 양성평등 실천에 앞장서야 한다. 양성평등 사회의 전제조건은 매사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자세와 태도다. 남성은 여성, 여성은 남성의 처지를 살피고 감안할 때 양성평등 사회는 우리 앞에 성큼 다가설 것이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