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화재에 문화재의 보고(寶庫)인 전통사찰은 속수무책인가. 지난 5일 화재로 낙산사가 거의 전소되고 보물 제479호인 동종을 비롯한 문화재들이 소실되면서 이런 안타까운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세계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판을 보관하고 있는 해인사를 비롯해 화엄사 각황전,법주사 팔상전,부석사 무량수전,봉정사 극락전 등 숱한 사찰 문화재들이 낙산사와 같은 대형 산불에 견딜 수 있을 지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이번에 소실된 낙산사 동종의 사례에서 보듯 불상과 범종 역시 화재에는 취약하다. 낙산사 동종은 조선 예종이 선왕인 세조를 위해 제작한 높이 1백58cm,입지름 98cm 크기로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걸작. 그러나 구리와 주석,아연을 대체로 7 대 2 대 1의 비율로 섞어 만드는 동종은 주성분인 구리의 용융점(섭씨 1천83도)이 낮아서 8백도 이상의 고온에는 위험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번 화재에서는 종을 보호하는 종각에 불이 붙으면서 종을 덮쳐 녹여버렸다. 불상 역시 화재에는 취약해 몽고군의 침입 때 황룡사가 불타면서 장륙존상이라는 거대한 불상이 흔적도 없이 녹아내린 사례가 있다. 목조건축이 대부분인 전각들은 더욱 취약하다. 실내외에 화재경보기와 물탱크 등을 갖추고 있지만 영동 산불 같은 대형 산불이 옮겨 붙을 경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전문가들은 "물탱크의 용량이 턱없이 적은 데다 대부분 깊은 산중,울창한 숲속에 자리잡고 있어 물탱크를 마냥 늘리기도 어려운 실정"이라며 "마땅한 대비책을 찾기 어렵다"고 토로하고 있다. 일본 나라(奈良)의 고찰인 도다이지(東大寺)처럼 경내 곳곳에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는 방안도 있지만 산중 사찰에 적합한지는 미지수다. 한편 문화재청은 긴급 현장조사 결과 이번 낙산사 화재로 동종을 비롯해 홍예문,원통보전 등 건물 14개동이 소실되고 보물 제499호인 원통보전 앞 7층석탑은 일부 그을렸다고 밝혔다. 이날 낙산사 현장을 찾은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낙산사의 산불 피해 규모는 30억원으로 추정되며 원통보전은 화재보험(5억원)에 가입돼 있다"며 "신속한 복구를 위해 재해대책비나 문화재 긴급보수비 등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유 청장은 또 "녹아버린 동종은 문화재청과 국립문화재연구소 등이 확보하고 있는 탁본 및 실측자료를 토대로 복원품을 제작할 계획이며 제작기간은 6개월,비용은 1억원 정도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은 낙산사의 상황보고를 토대로 "법당 등 전각 총 37채 가운데 주요 전각 22채가 전소됐다"고 집계해 문화재청 조사결과보다 피해액이 훨씬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30만평가량의 사찰림 중 3분의 2가 피해를 입어 낙산사 현장에서는 피해액이 3백억원에 이른다는 추정도 나오고 있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