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외환수급 정책에 변화 조짐이 일고 있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이같은 방향은 바람직하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의 외환수급 정책은 '유입촉진·유출억제'에 맞춰 왔다. 특히 외자정책에 있어서는 역차별 문제가 제기될 정도로 국내자본보다는 외국자본,국내기업보다는 외국기업이 선호돼 왔다. 물론 이같은 정책으로 외환보유고가 2천억달러를 넘을 정도로 외화유동성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유입 우선의 외환수급 정책이 이제는 갈수록 부정적인 측면으로 부각된다는 점이다. 가장 중점을 뒀던 외화유동성면에서도 이제는 과다 보유에 따른 국민경제 전체의 효율성 감소, 시장개입용 외평채·통안채 발행분 이자 등의 부작용이 만만치 않은 상태다. 국내금융시장에서는 윔블던 효과의 피해가 하루가 다르게 심해지고 있다. 윔블던 효과(Wimbledon Effect)란 윔블던 테니스 대회에서 유래된 용어로 주최국인 영국 선수보다 외국선수가 우승하는 횟수가 많은 것처럼 한 나라의 금융시장에서 자국인보다는 외국인의 영향력이 더 커지는 현상을 말한다. 우리처럼 단기간에 외국인 비중이 높아진 전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현재 국내증시에서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43%에 달한다. 국내금융회사와 기업들도 외국인 손으로 속속 넘어가고 있다. 이 때문에 우리 경제내에서 창출된 부가가치의 상당분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국부유출 정도가 이미 심각한 수준이다. 경제정책도 무력화되고 있다. 외국자본이 수익을 최우선시함에 따라 정책에 비협조적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결국 이 문제는 외국자본이 확대된 만큼 우리 경제주권 약화와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 기업의 경영권도 위협받는다. 특히 글로벌 펀드들이 벌처펀드형 투자,적대적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능동적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추세가 심해짐에 따라 종전과 같은 수준의 외국인 비중이라 하더라도 기업이 느끼는 경영권 위협정도는 더 심하다. 경기면에서는 원화 환율의 지나친 하락으로 수출기업에 부담이 되고 있다. 더욱이 외환보유액이 과다한 상황에서 종전의 외자선호 정책은 '원화 환율의 추가 하락'이라는 기대심리를 불러 일으켜 환투기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고 있다. 따라서 이제부터 외환수급 정책은 최소한 유입에 맞춘 유출로 확대균형을 모색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책운영과 국민정서에서 '외자는 무조건 좋다'는 잘못된 인식부터 개선하는 일이 시급하다. 앞으로 외자정책은 부가가치·고용·경제구조 변화 등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외자를 우선시하는 질적 선별정책으로 나아가야 한다. 국내자본을 육성하는 과제도 중요하다. 현재 정부가 구상 중인 사모펀드(PEF) 등이 조기에 활성화돼 국내자본이 육성돼야 외국자본에 대응할 수 있다. 또 그래야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국부유출과 경제정책의 무력화를 방지하면서 국내기업들의 경영권도 효율적으로 방어할 것으로 기대된다. 마지막으로 유출에도 신경써야 한다. △기업의 해외투자 규제 축소 △투신·자산운용사의 역외규제 완화 △개인의 건전한 해외투자 유도 등을 통해 유입에 맞게 유출에도 균형이 이뤄지도록해야 한다. 다만 외환정책 기조변화에 따른 투기세력과 국부유출을 방지할 수 있는 대책은 마련해 놓아야 한다. 논설·전문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