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례대표로 17대 국회에 진출했던 한나라당 박세일 의원이 결국 한나라당을 탈당했다. 행정도시법 찬성 당론에 반발해 정책위 의장직에서 물러난 뒤 의원직 사퇴 의사를 밝혔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최후의 수단을 선택한 것이다. 박 의원의 사퇴에 대해 '너무 무책임한 것 아니냐'는 비판적 시각도 없지는 않지만 구태 정치에 식상해 있는 국민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을 것이다. 국회의원이 되면 40가지가 바뀐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의원직은 사회의 대표적인 기득권이다. 너도나도 목을 매는 이유다. 한때는 수십억원을 줘야 달 수 있었던 게 야당 비례대표 '배지'다. '비례대표는 감기도 안 걸린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승계가 힘든 자리이기도 하다. 그런 기득권이기에 박 의원이 의원직 사퇴 약속을 지킨 것 자체가 이례적이다. '정치적 소신' 때문에 의원직을 버린 일이 헌정 사상 유례가 없다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식언'을 밥먹듯이 하고 금배지를 위해선 철새 행보도 서슴지 않는 우리 정치 풍토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박 의원의 결단에 국민적 관심이 쏠린 것도 수십년간 봐온 우리 정치인들의 사리사욕을 앞세운 고질적인 구태와 대조를 이루기 때문이다. 정치에 발을 들여놓았다가 미련이 남아 여의도를 떠나지 못하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임기 만료와 함께 스스로 정치판을 흔쾌히 떠난 정치인은 손가락으로 꼽아야 할 정도다. 의원직을 유지하기 위해 갖은 추태를 보인 정치인 또한 얼마나 많은가. 선거 때만 되면 지키지도 못할 공약(空約)을 줄줄이 내놓는 것은 기본이고 표가 된다면 업무의 효율성은 뒤로 한 채 천막 당사와 시장 당사도 마다하지 않는 게 우리 정치권의 현주소다. 적어도 박 의원의 선택은 이와는 다르다. 정치권은 박 의원 탈당을 냉소적으로 평가절하할 게 아니라 박 의원의 결단에서 최소한 한가지는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 같다. 자신이 국민에게 한 말은 반드시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재창 정치부 기자 lee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