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기업의 한국지사에 근무하는 외국인들은 서울생활을 시작하는 직장동료에게 "두번 놀랄 각오를 하라"고 충고한다. 세계적으로 집세가 비싸기로 소문난 런던이나 도쿄에서 살다가 한국으로 전근오는 이들도 서울의 높은 집세에 혀를 내두른다. 그다음엔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깔세"에 기절초풍한다. 깔세란 집을 빌리는 외국인에게 전세 전기간의 월세를 일시불로 요구하는 한국만의 관행. 영국계 은행의 서울지점에 근무하는 존 톤씨는 한남동 빌라를 2년동안 전세들면서 1억2천만원을 선지급해야했다. 외국에선 기껏해야 1~3개월치 집세를 보증금조로 미리 받는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주한외국인들 사이엔 깔세에 얽힌 불유쾌한 기억들이 허다하다. '깔세괴담(horrible story on keymoney)'이라는 이름으로 책을 엮고도 남을 정도다. EU 상공회의소의 디히터 슈미츠 이사는 "개인적으로 집을 구해야 할 경우 한꺼번에 수억원의 목돈을 마련하는게 쉽지 않을 뿐더러 기업 입장에서는 주거를 비롯한 과외비용이 워낙 비싸다 보니 한국에 파견하는 인원을 가능하면 줄이려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다국적 광고회사에서 일하는 일본인 C씨(동부이촌동)는 "한국에서 외국인을 상대로 한 깔세 임대가 재테크 방편으로 여겨지는 것으로 안다"며 "외국인을 봉으로 여기는 것 같아 불쾌한게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KOTRA 산하 외국인 투자유치 전문 기관인 KISC가 지난해말 외국인 투자기업 임원 2백2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열명중 네명 가량(33.6%)이 계약기간 동안의 집세를 한꺼번에 냈다. 하지만 열명 중 여섯명(61.9%)은 집세형태로 매달 월세를 내기를 희망했다. 깔세가 편하다는 사람은 5.8%에 불과했다. 런던 파리 도쿄 등지에서 생활해본 모 종합상사의 김규일 이사는 "한국이 '가격대비 소비자 만족도'라는 측면에서 세계에서 제일 비싼 셈"이라고 말했다. KOTRA 도쿄무역관의 신태철 차장은 "버블이 꺼진 도쿄 집값은 강남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낮다"고 말했다. 더욱이 '깔세'를 감안하면 한국의 집세는 도쿄보다 높아진다. 집을 빌리거나 살 때 제대로 된 외국어 정보가 태부족하다는 것도 단골 애로사항이다. 외국계 은행에 근무하는 재미교포 L씨(32)는 2년전 한국으로 부임하면서 고국에 정착하기로 했다. 분양을 받으면 아파트를 저렴하게 장만할 수 있다고 해서 청약을 해보려고 했지만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주택청약 방법이나 절차에 대한 영어 안내문을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다보니 외국인들의 주거환경 만족도는 낙제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다. KISC 조사 결과 외국인들이 느끼는 불만중 주거환경 부문(47.5%)이 교통환경(53.8%)과 더불어 선두를 달렸다. 주거환경중에서는 높은 임차료(76.4%),월세 물건 부족(48.1%),부실한 계약서 내용(13.2%) 등이 특히 불만을 샀다. 현재 외국인의 주택임대를 관리하는 법령은 내국인과 같은 기준에 따르도록 돼 있다. 표준화된 계약서가 없다보니 부동산중개업소별로 계약서를 작성해 사용하고 있는 형편.전세의 경우 전세금을 되돌려 받을 수 있을지 불안하다는 외국인도 상당수에 달한다. 현재 운영되는 전세금 보증 신용보험의 경우 전용면적 30평(1백㎡) 이하 주택에만 적용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외국인은 30평을 훨씬 넘는 주택을 빌리는 경우가 많아 사실상 보험적용을 받을 수 없다. 미국계 헤드헌팅사인 맥키니 컨설팅의 스키브 맥키니 대표는 "한국의 높은 주거비용 부담은 외국 기업들이 주변국인 싱가포르나 홍콩으로 발길을 돌리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경제연구원 권영민 연구위원은 "글로벌 사회를 지향한다면 주거환경 역시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야 한다"며 "관행에 의존하는 임대차방식을 개선해 외국인용 표준 임대차계약서를 활성화하는 반면 임대시스템,주택정보 접근성 등을 합리적으로 개선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혜수 기자 dears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