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국 < 강원대 경제무역학부 교수 > 자유주의연대, 잘 알려져 있는 한국뉴라이트의 단체이름이다. 그 이념적 화두는 자유주의,그리고 작은 정부-큰 시장이다. 이는 하이에크,프리드먼 등이 주도한 서구의 뉴라이트 이념이다. 자유주의자로서 우리에게는 매우 반갑고 고무적이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자유주의연대가 어떤 질서관과 국가관,그리고 시장관을 가지고 자유주의와 작은 정부-큰 시장이라는 이념을 정당화하고 있는가의 문제다. 자유주의연대가 자유주의에 대한 정당화를 위해 사용하고 있는 중요한 개념들은 이렇다. 인위적 질서로서 공법질서,성찰적 민주주의,전문가-엘리트의 덕치,국가경영 정치,경쟁적 시장경제의 약육강식,공동체주의,정치적 다원주의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런 개념들은 스티글리츠,존 그레이,앤서니 기든스,존 롤즈,샌들,월저 등 쟁쟁한 서구의 뉴레프트가 큰 정부-작은 시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개발한 개념이라는 것이다. 이 개념을 반박하고 거부하기 위해 진력했던 것이 서구의 뉴라이트다. 좌파의 개념적 세계를 가지고 우파의 작은 정부-큰 시장을 정당화하려는 것이 자유주의연대의 이념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비정한 약육강식으로 이해되는 시장의 자유 경쟁으로부터 결코 큰 시장-작은 정부는 도출될 수 없다. 자유경쟁이야말로 시장참여자들이 멋대로 행동하는 것을 막는 가장 효과적인 장치다. 그리고 그것은 좋은 방법을 찾아내는 절차라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시장을 폭정으로 이해하는 공동체주의를 자유주의와 절충해 작은 정부-큰 시장을 도출하는 것,이도 무모한 일이다. 지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완전한 엘리트-전문가의 덕치,이것은 시장경제에 대한 계획과 규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좌파들이 만들어 낸 정치관이다. 이런 낭만적인 정치관으로부터 작은 정부-큰 시장은 창출될 수 없다. 우리는 전문가-엘리트라는 정치인들이 경제자유를 유린했던 수많은 역사적 사례를 잘 알고 있다. 전통적인 자유주의자들이 정치에서 엘리트주의를 반대하는 이유도 이런 경험 때문이다. 자유주의연대는 뉴레프트가 제창한 성찰적 민주주의,심의 민주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이런 민주주의도 작은 정부-큰 시장과 관계 없다. 무슨 민주주의든 제한되지 않으면 빅 거버먼트가 초래된다.그래서 자유주의 전통에선 개인의 재산권과 자유를 보호하는 헌법 규칙에 의해 민주정부를 억제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제한적 민주주의(limited democracy)'를 강조한다. 자유주의연대가 내세우는 국가경영 정치도 사회의 모든 자원을 국가가 경영 관리하는 것을 기술하는데 적합한 좌파의 개념이다. 질서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사법(私法)과 자생적 질서 대신 공법과 인위적 질서를 말하는 것도 작은 정부-큰 시장과 관계가 없다. 국가가 없으면 개인의 권리도 없고 질서도 없고 법도 없다는 국가주의로부터는 결코 작은 정부-큰 시장이 나올 수 없다. 국가 이전에 권리가 있고 법과 질서가 있다는 이 엄연한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자유주의의 첫 걸음이다. 사적 세계에서나 의미가 있는 다원주의를 정치에 적용한 다원주의도 자유주의와 거리가 멀다. 자유와 분배평등을 절충한 좌파의 이념인 까닭이다. 뉴레프트로 오인될만큼 체계적으로 좌파의 개념적 세계를 전제하면서 세계화를 주장하는 것,분배평등을 비판하는 것,교육의 자유화를 요구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인위적 질서를 중시하면서 국가주의를 비판하는 것도 온당치 못하다. 엘리트 주의를 주장하면서 작은 시장-큰 정부를 외친다 한들 기회주의적으로 들릴 뿐이다. 자유주의연대에 대한 한국사회의 기대는 대단히 크다. 하지만 기대가 큰만큼 충족해야 할 도덕적 의무와 책임도 크다. 이러한 기대에 부응키 위해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좌파의 개념적 세계를 유감없이 버리는 일이다. 작은 정부-큰 시장을 위한 뉴라이트의 철학적 이론적 바탕을 다시 세워야 한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