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민감한 정책현안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던 한국은행이 15일 '투기성 외국자본의 문제점과 정책과제'보고서를 통해 '투기성 외국자본과의 전쟁'을 촉구하고 나선 배경이 주목을 모은다. 외국자본에 의한 폐해가 최근 몇 년간 위험수위에 도달했다는 위기의식이 마침내 중앙은행으로까지 확산됐다는 지적이다. 박승 한은 총재가 지난 10일 기자간담회에서 "투기자본의 국내 외환시장 공격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처할 것"이라고 밝힌 것도 이같은 상황인식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단기차익을 노린 외국계 투기자본의 국내시장 진출 확대는 국내 금융시장 교란은 물론 국내 제조업의 성장성까지 해친다는 게 한은의 진단이다. 반면 외국자본에 대한 국내 규제는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급속도로 완화돼 자본시장이 가장 발달한 미국 영국 등에 비해서도 미흡하다고 한은은 분석했다. ◆위험수위 도달한 외국자본 폐해 보고서는 외국자본은 외환위기 이후 국내 기업 및 금융회사의 자금난 해소와 신속한 구조조정에 상당 부분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일부 투기성 자본의 경우 단기투자 이익 극대화를 위한 무리한 구조조정과 고율 배당,유상감자 등으로 국내 기업의 장기 성장성을 약화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소버린과 경영권 분쟁을 겪고 있는 SK㈜가 2003년 순이익의 6배가 넘는 9백61억원을 배당금으로 지급한 것이나,극동건설을 인수한 론스타가 2003년 10월 극동빌딩을 매각하고 유상감자를 실시한 게 대표적 사례로 꼽혔다. 투기성 외국자본에 의한 경영권 간섭 및 적대적 인수·합병(M&A) 가능성이 커지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외국자본 견제장치 강화해야 이처럼 외국자본에 의한 폐해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 데 반해 이에 대한 견제장치는 자본시장이 발달된 미국이나 영국에 비해서도 미흡하다고 보고서는 평가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과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자본시장을 전면 개방한 결과다. 따라서 건전한 외국인 투자자본의 유입을 크게 저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투기성 단기 외국자본을 견제할 수 있는 적절한 수준의 규제 및 방어장치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서는 강조했다. 보고서는 우선 사후적으로 외국인 투자를 조사하고 투자철회를 명령할 수 있는 권한을 대통령에게 부여하며 공기업 민영화시 정부가 '황금주'를 보유함으로써 자산처분 경영권 변동 등 주요 의사결정에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또 공시제도 강화를 통해 외국자본의 적대적 인수·합병 시도에 대해 대응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한편,기관투자가의 국내기업 지분 보유 확대를 통해 기업지배구조 개선과 경영권 안정을 도모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동윤 기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