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처 출신 A씨는 여자관계가 복잡하고 민주적 리더십과 거리가 멀다.","공기업 B사장은 최근 간부급 인사에서 특정 지역의 인물들을 모조리 배제한 채 요직에 자기 고향 사람을 심는 데 혈안이 돼있다." 특정인을 겨냥한 '마녀사냥식' 투서가 참여정부 들어 위험 수위에 달하고 있다. 과거 정부의 조각(組閣)작업이나 군·검찰의 인사 때마다 연례행사처럼 쏟아졌던 투서들이 최근에는 정부 산하기관과 공기업,심지어 중앙부처의 국·과장 인사에까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주 KOTRA 신임 사장에 대한 재공모 방침이 정해진 결정적 이유도 청와대 인사추천위원회의 인사검증 작업에서 3명의 최종 후보자들에 대한 음해성 투서가 난무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후보자들의 개인적인 사생활은 물론 시시콜콜한 과거 행적까지 투서의 도마 위에 오른 것. 산업자원부 관계자는 "작성자가 개인이 아니라 여러명이 조직적으로 가담한 인상을 풍길 정도로 후보자들을 흔들어대는 투서가 꼬리를 이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사실여부를 떠나 그런 투서를 접한 인사위 관계자들의 부담도 컸을 것"이라고 말했다. '익명의 음해성 투서는 접수하지 않을 것'이라는 정부방침에도 불구하고 공기업을 중심으로 인사철을 전후한 특정인 흔들기성 투서는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C공사의 경우 지난해 9월 당시 사장 K씨가 취임 1년여 만에 낙마한 것도 "K사장이 업계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내용의 투서가 반복적으로 청와대 등 요로에 쏟아져들어간 것이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정부 관계자들은 K사장이 취임 후 임원급을 젊은피로 수혈하는 등 기존 조직을 대대적으로 정비하면서 거센 내부저항에 휘말린 경우로 보고 있다. 지난해 D공사의 K사장이 임기를 1년여 남기고 중도하차한 것도 공사를 수주한 건설회사의 하청업체가 뇌물사건에 연루된 것과 관련,대대적인 투서 공세에 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투서의 대부분이 출처가 불분명한 무기명으로 작성돼 있고 사실확인도 어려운 '아니면 말고'식 괴문서에 가깝다는 점이다. 청와대 파견근무 경험을 가진 한 정부부처 관계자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우편물 형태로 접수되는 투서 가운데 열에 아홉은 사실관계가 오류투성이인 경우"라며 "물론 그 중에는 육하원칙에 맞춰 보낸 편지도 있어 모른 척 하자니 꺼림칙하고 일일이 확인하다 보면 인선작업이 지체되는 때도 많다"고 전했다. 이 같은 투서의 폐해는 단순히 공정한 인사작업 수행을 방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혁신 드라이브'를 건 몇몇 공기업들의 기관장들이 기업 내외부의 반대세력에 의한 투서로 중도하차 위기에 처해 있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심지어 대부분 투서내용이 허위로 밝혀졌음에도 불구,일단 말썽이 났다는 이유만으로 퇴진을 종용받는 경우도 있다. 정부 관계자는 "각종 투서가 조직 흔들기로 악용되면서 기관장들이 내부개혁등 소신경영을 위협받는 부작용이 심각한 상황"이라며 "그 결과 정부와 공기업의 구조조정 노력이 물거품으로 돌아가면 결국 피해자는 국가 전체가 될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