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어머니 ‥ 지용근 <글로벌리서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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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용근 글로벌리서치 대표 ykji@globalri.co.kr >
명절이 되면 몇 가지 경험하는 것이 있다.
하나는 용인으로 달려가 부모님과 함께 이틀 밤을 지내는 것이고,또 하나는 그 곳에서 30여명의 친척들을 동시에 만나는 일이다.
누구네 집 아들이 결혼을 했는데 며느리가 마음에 안 든다는 당숙어른 이야기,조상들 묘를 합장해야 하는데 각 집마다 돈을 갹출해야 하니 1백만원씩 내라,아니 적으니까 1백50만원씩 하자는 얘기,사위가 목사인데 자긴 아직도 교회 나가기 싫다는 먼 삼촌의 이야기 등등.평소에는 잘 듣지 못하던 이야기들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온다.
올해도 아파트 경비를 하시는 칠순이 다 되신 작은아버님은 일 때문에 못 오셨고,지난번 교통사고로 크게 다치신 셋째 작은어머니가 대학 졸업 후 1년 만에 취직한 아들과 함께 오셨다.
아들 취직이 여간 자랑스러운신 게 아니다.
어머니는 당신 집에 이렇듯 많은 손님들이 오는 게 기쁘신가 보다.
평생 가족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셔서 이제는 쉬고 싶기도 할 텐데 직장생활하는 며느리들 일 시키지 않으려고 당신이 직접 나서서 부엌일을 하신다.
이렇게 살아오신 분이라 말리기도 어렵다.
내가 입대할 때 일이다.
논산훈련소에 입소한 며칠 뒤 입고 간 사복을 모두 싸서 집으로 보내는 일이 있었다.
워낙 빠른 시간 안에 싸야 하므로 훈련받으면서 묻은 흙이 고스란히 옷에 남아있게 마련이다.
어머니는 이 옷을 받고 얼마나 많이 우셨는지 모른다.
첫 휴가 나왔을 때 맨발로 뛰어나와 날 안고 우셨던 어머니,몇 년 전 아들이 회사에서 일하다 과로로 쓰러졌단 소식을 듣고 어린아이처럼 울면서 맨발로 병원까지 뛰어오신 어머니.
그 아들이 오랜 직장생활 끝에 조사회사를 창업했다.
개업식 날 집에 돌아가셔서 그토록 무뚝뚝한 아버지가 어머니 어깨를 주물러 주시면서 말씀하셨단다.
"여보,우리 아들 낳아줘서 고마워." 어머니는 그날 많이 우셨단다.
사업하는 아들이 명절에 와 피곤하다는 핑계로 살갑게 대해 드리지도 못했는데도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좋아하신 어머니.나도 이제 자라나는 아이가 있기에 조금이나마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이런 절대적인 사랑이 가정을 넘어 우리 사회 곳곳에 스며드는 한 해가 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