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있었던 민주노총 강경파 대의원들의 '난동'은 우리나라 노동운동의 현실을 액면 그대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대화와 협상보다는 투쟁지상주의에 물든 전투적 노동운동이 가감없이 노출된 것이다.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일반국민과 노동자들의 마음은 착잡하다 못해 서글프기까지 하다. 강경파들은 민주적 절차도 무시한 채 자신들의 견해와 다르다는 이유로 노·사·정 대화 찬성파 대의원들에게 물리력을 행사하며 난장판을 만들었다. 판을 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것이다. 지금까지는 사용자나 정부를 상대로 폭력행위를 동원하긴 했어도 동료 노동자들에게 행사한 적은 거의 없었다. 그만큼 강경파들의 일탈은 일선 노동자들에게는 충격이다. 왜 이들은 폭력을 휘두르며 뜻을 관철시켰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노동운동의 본질을 오로지 투쟁으로만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대의원대회 토론 때도 노·사·정 대화에 찬성하는 한 대의원이 "노·사·정에 참여해야 더 많은 것을 얻을수 있다"고 주장하자 곧바로 반대파들이 "야 개××야! 웃기지마"라며 욕설로 대응했다. 이들은 "노동운동에 있어 대화와 타협은 있을수 없고 오로지 투쟁뿐"이라며 갈등 분위기를 부추긴다. 투쟁을 통해서만 사용자와 정부를 굴복시키고 노동해방을 이룰수 있다는 논리다. 그러다보니 대화 복귀에 따른 노동계의 실익은 따져보지도 않고 집행부가 추진하던 노·사·정 복귀를 반대한 것이다. 투쟁은 더이상 진보가 아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천덕꾸러기로 취급받는다. 1970년대 이전에 이미 세계노동운동 현장을 휩쓸고 지나간 철지난 마르크스 이데올로기가 아직도 우리 노동현장에 살아 숨쉬며 눈·귀가 멀고 판단이 마비된 좌파 강경세력들의 운동노선을 움직이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번 사태에 대해 민주노총 산하 조합원들 사이에는 그 어느 때보다 자성과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강경파들이 현실인식 없이 투쟁만능주의를 고집한다면 고립무원의 상태에 처하게 돼 결국은 소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