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악한 전쟁(Dirty War)이 추악한 모습으로 끝을 맺을 수는 없다." 1960년대에서 80년대 초반까지 군사정권이 주도했던 중남미도 `치열한 냉전'의와중에서 좌익인사 인권탄압 사태를 일컫는 `추악한 전쟁'을 겪었으며, 지금 이 시간까지도 이를 둘러싼 고통은 현재진행형으로 계속되고 있다. 작년 12월 전격 기소된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전(前) 칠레 대통령의 공판 개시일자에 전세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고, 스페인 법원에서는 아르헨 군정 시절 인권유린 혐의를 받는 전직 아르헨 해군 장교의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이 재판은 다른 국가에서 자행된 일이라도 중대한 인권범죄는 용의자의 국적에상관 없이 해당 국가 법원에서 재판할 수 있다는 국제법 선례를 보여주며 인권범죄단죄의 새로운 역사를 세웠다는 지적이다. 지난달 중순 기소를 단행한 주인공이자 그 동안 아르헨ㆍ칠레 인권유린 사건을파헤쳐온 스페인의 `깨끗한 손' 발타사르 가르손 특별국가법원 판사는 멕시코 사법부에 대해서도 범죄집단과의 부패고리를 끊고 개혁해야 한다며 일침을 가했다고 멕시코 유력일간지 레포르마가 2일 보도했다. `추악한 전쟁'과 관련, 칠레를 1973년부터 17년간 철권통치했던 피노체트의 기소는 중남미 과거사 정리의 한획을 긋는 일로 평가받는다. 특히 피노체트가 배후 조종 혐의를 받는 `콘도르 작전'은 아르헨티나, 브라질등 남미권 대부분의 국가 군정과도 긴밀히 연결돼 상당한 파장을 가져올 전망이다. 무엇보다 2000년대 이후 좌파 정권 도미노 현상을 몰고 오며 군정청산에 박차를가해온 아르헨티나, 멕시코, 브라질 등 민주정부는 피노체트 사법처리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며 향후 재판절차를 주시하고 있다. 칠레에서 피노체트 사법처리는 일대 사건이었다. 그 동안 90세에 가까운 고령에다 대법원 `치매 판결'로 면죄부를 받았던 피노체트를 단죄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수그러들지 않았고 오히려 커져왔다. 칠레군은 작년 11월 피노체트 시절 자행된 인권유린에 대해 책임을 느낀다고 처음으로 사과성명을 냈다. 이후 리카르도 라고스 칠레 대통령은 피노체트 시기 불법감금과 고문 등에 시달린 수천 명의 피해자들에게 보상을 약속했다. 이와 함께 지난달 말에는 피노체트 시절 칠레 비밀정보국(DINA)을 이끌었던 퇴역장성 마누엘 콘트레라스(75)가 자택에서 전격 체포됨으로써 칠레의 과거사 단죄는절정을 이루고 있다. 칠레의 이 같은 단호한 과거사 청산 열기는 인근 아르헨티나에서도 동시에 일고 있다. `민주화 기념관' 건립 추진은 2003년 5월 중도좌파 네스토르 키르치네르대통령이 취임한 이래 계속되고 있는 과거 청산작업이 최고조에 달했음을 보여주는일로 평가된다. 키르치네르 대통령은 작년 3월 군정 출범 28주년 연설에서도 군사독재 기간은아르헨 역사에서 가장 고통스럽고 잔인했던 시기에 포함된다며, 군정 최고지도자 2명의 초상화를 사관학교에서 제거해 아르헨 역사에서 끔찍한 시기는 이제 완전히 끝났다는 의미를 부여하자고 강조했다. 또 키르치네르 대통령은 취임 3개월째였던 2003년 7월 과거 군정에서 인권유린을 자행한 인사들의 외국 신병인도를 무조건적으로 거부하도록 한 포고령을 무효화했다. 이어 의회는 전직 군정관계자들을 보호해온 두 가지 주요 사면법을 폐기하기로 의결했다. 이 결정은 현재 스페인 법원에서의 전직 아르헨 장교에 대한 재판을가능하게 했다. 멕시코의 경우 71년 장기집권 체제를 허문 장본인 비센테 폭스 대통령은 작년연합뉴스 회견에서 "과거 범죄만을 전담할 특별검사제를 도입했고 조사를 통해 당시사건이 유죄라는 결과가 나왔다"면서 "과거청산과 관련해 공소시효 소멸 문제가 있으나 진실을 알리는 것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와 맥락을 같이해 반인도주의 범죄는 공소시효가 없다는 2002년 멕시코 대법원 판결에 이어 2003년 11월에는 70년대 `추악한 전쟁' 시기 좌익인사 실종사건에관여한 혐의로 전직 경찰간부에 대한 체포영장이 처음으로 발부됐다. 브라질에서는 군정시절 인권탄압 비밀 파일 중 일부가 최근 유출됐다. 이로 인해 그 동안 파기된 것으로만 믿어졌던 군 비밀 파일의 완전한 공개 여부를 둘러싸고군정 피해자였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실바 대통령의 좌파 정부가 어떻게 대응할 지 주목된다.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김영섭 특파원 kimy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