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생연분'을 설명하기 위해 할아버지가 "할멈과 나 사이를 뭐라고 하나" 하자 할머니가 '웬수'라고 했다가 네 글자라니까 '평생 웬수'라고 하는 통에 웃음을 자아냈던 TV프로그램이 있었다. 사람 사이가 이어지자면 '필요와 매력'중 한 가지는 요구된다지만 노부부에겐 그것 말고도 뭔가가 있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오늘의 세대는? 최근 방송된 TV드라마 '12월의 열대야'는 결혼에 대한 두 여자의 상반된 태도를 보여줬다. 한 여자는 부잣집 아들이자 의사인 남자를 택하느라 오래 사귄 애인을 버리고,다른 사람은 차가운 남편과 달리 자신을 정겹게 대해주는 남자와의 사랑을 찾아 안정된 생활을 포기한다는 게 그 것이다. 어느 쪽이 현실에 가까운가. 결혼의 첫째 조건은 과연 무엇인가. 지금은 달라졌는지 모르지만 90년대 말 일본 여성의 결혼조건은 3C라는 보도가 나왔었다. 돈이나 학벌보다 '편안하고(Comfortable) 말이 통하고(Communicative) 협조적인(Cooperative)' 게 훨씬 더 중요하다는 얘기였다. 결혼정보업체의 조사에서 남성의 소득과 교제 성공률 사이에 이렇다 할 상관관계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결혼적령기 여성을 대상으로 한 다른 조사에서도 남성의 첫째 조건으로 '자상함'이 꼽혔다. 여대생들이 답한 좋은 남자 1위도 '똑똑하고 지적'이거나 '집안 좋고 돈 많은' 남자가 아닌 '유머러스하고 재미있는 남자'였다. 이런 결과를 액면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소득이 높은 경우 상대에 대한 요구가 더 높았을 수도 있고,설문조사에선 속 마음을 그대로 털어놓지 않는 수가 잦기 때문이다. 실제 사귈 때는 집안과 재력,학벌 등에 신경쓰지 않는다고 해놓고 정작 결혼하고 싶은 남자 1순위는 학벌과 경제력이 뛰어난 남자라고 답한 것도 있다. 연애하고 싶은 남자와 결혼하고 싶은 남자가 다르다는 답이 우세한 결과지만 연애와 결혼을 칼로 무 자르듯 하기란 쉽지 않다. 사랑보다 무서운 게 정이기도 하고.성격과 경제력 가운데 무엇이 우선이냐는 물음은 우문이다. '결혼은 판단력 부족,이혼은 이해력 부족,재혼은 기억력 부족 탓'이라는 말도 있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