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자 10명 중 8명은 실패를 경험한다는 통계가 있다. 그만큼 창업이 어렵다는 말이다. 하지만 실패 사례는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 소중한 교훈이 될 수 있다. 중소기업청과 한국경제신문사는 최근 '창업 성공·실패사례 공모전'을 열어 우수작을 선정,시상했다. 창업 준비생들이 실패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을 수 있도록 '실패에서 배운다' 시리즈를 싣는다. 2002년 5월 나의 제2인생은 찬란하게 막을 올리는 듯했다. 꽃게·아귀찜 체인점을 개업하던 그 날,1백20명이 앉을 수 있는 식당은 꽉 들어차 번호표를 받은 50여명이 점포 앞에 줄지어 기다렸다. 16명의 종업원들은 밀려드는 손님을 맞느라 쟁반에 담아 놓은 김밥을 집어먹는 것으로 끼니를 때워야 했다. 음식을 더 달라는 아우성,신발이 바뀌었다는 고함 등으로 점포 안은 글자 그대로 '북새통'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낯익은 손님 얼굴들이 하나둘씩 보이지 않았다. 인근 학교 자모회 모임도,할머니들의 계모임도 끊겼다. 주변 중·고교 선생님들도,공장 직원들도 눈에 띄게 줄었다. 종업원은 16명에서 이제 5명만 남았다. 도대체 뭐가 잘못된 것인가. 음식점과 함께했던 지난 3년간의 아픈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식당이나 하자.' 퇴직 후 식당을 차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나의 창업도 이런 안이한 자세로 시작됐다. 음식 장사는 큰 기술이 필요 없고 조금만 고생하면 먹고 사는 데 별 지장이 없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이런 맘으로 뛰어드는 사람들의 90%는 2년 내에 망해 나가는 것이 외식 창업 시장의 현실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가장 큰 실패 이유는 식당 경영의 'ABC'도 모른 채 덤벼들었다는 것이다. '이윤을 남겨야 한다'는 것에만 집착했지 '남다른 맛과 서비스를 팔아야 한다'는 데에는 생각이 못 미쳤다. 25년간 몸에 밴 봉급쟁이,그것도 대기업 관리직 간부로서의 티를 벗고 '장사꾼'으로 거듭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또 한가지,자기 사업은 결국 자기가 하는 것이다. 프랜차이즈 본부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는다면 그것은 커다란 오산이다. 대기업 계열 금융사의 임원으로 퇴직한 나는 이런저런 창업 궁리를 하다가 2002년 5월 서울 강북 변두리 지역에 1백평이 넘는 대형 '꽃게,아귀 전문' 체인점을 냈다. 당시 비슷한 점포를 내서 재미를 보고 있던 친구의 얘기를 들은 터에 체인본부의 '논리정연'한 홍보 팸플릿을 접하는 순간 '탁'하고 무릎을 쳤다. 식당경영에 문외한이었지만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된다'는 체인본부의 말은 당시로서는 무척 힘이 됐다. 체인본부로부터 소개를 받고 보증금 2억원,월세 4백90만원(관리비 포함)에 점포를 얻었다. '대형화=경쟁력'이라는 '착각'에 보증금을 웃도는 돈을 추가로 들여 깔끔한 인테리어와 함께 대대적인 홍보를 펼쳤다. 개업 전날 지역 기관장들과 노인들을 모시고 경로잔치를 열어 구민 신문에 미담기사로 소개되기도 했다. 체인본부의 권유대로 판촉도우미들을 불러 점포 앞에서 3일동안 오픈 행사를 했고 전단도 개업 후 열흘 이상 돌렸다. 초기 홍보를 열심히 한 데다 인근에서 볼 수 없었던 대형 식당을 낸 덕에 우리 점포는 동네 화젯거리가 됐다. 가맹점 최고 효자 점포로 월 매출은 1억원을 웃돌았다. 그러나 이런 즐거움 속에 하나둘 문제가 싹트기 시작했다. 번호표를 받고 기다리는 손님들의 항의가 이어졌고 '짜다','맵다'며 음식 맛에 문제를 제기하는 손님들도 적지 않았다. 밖에서 기다리다 순서가 와서 어렵사리 테이블에 앉았는데 주문이 누락돼 음식이 안 나오자 다시는 오지 않겠다며 가버리는 손님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밀려오는 손님을 받는 데만 정신이 팔렸을 뿐 불만을 갖고 돌아가는 손님에 대해 성의 있는 대응을 하지 못했다. 오히려 까탈스러운 손님들에 대해서는 '당신 안와도 올 사람 많아'라는 생각까지 했다. '새파랗게 젊은' 20대 고객이 삿대질을 해댈 때는 부아가 치밀어 표정이 일그러졌다. '회사 다닐 때는 40대 차장도 내 앞에서 어려워 했는데'라는 생각으로….음식 준비 시간과 함께 원가 등을 감안해 반찬도 맛보다는 만들기 편한 것으로 바꾸어갔다. 요리에 일절 취미가 없었기에 주방일은 전적으로 주방장에게 맡겼다. 종업원 문제도 골칫거리였다. 종업원들과의 관계는 임금으로 맺어진 '계약관계'로만 생각했다. 그들의 심리는 헤아리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시키기만 했다. '힘든데 고생한다'는 말 한마디 건넨 기억은 거의 없다. 그러다 보니 봉급을 받은 다음날 한꺼번에 4명이 그만둔 적도 있었다. 자연히 '신삥' 종업원이 많아졌고 탕을 달라는데 찜을 내주고,찜을 달라는데 탕을 내주는 주문 착오도 왕왕 일어났다. 개업 1년 뒤부터는 손님이 눈에 띄게 줄더니 지난해부터는 현상 유지조차 어려운 상황으로 내몰렸다. 매출도 개업 초기에 비해 3분의 1 이하로 떨어졌다. 인테리어비,홍보비 등으로 보증금보다 많은 돈을 투자했지만 현재로서는 대부분 회수할 생각조차 하기 힘든 실정이다. 한때는 경기 탓이려니,상권을 잘못 택한 것이려니 하는 생각도 해봤다. 그러나 손님 많기로 유명한 강남의 한 아귀찜집을 가보고는 생각이 바뀌었다. 우리 가게는 만들기 번거롭다고 간단한 반찬으로 바꾼 데 반해 그 집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맛있는 반찬들이 맛깔스럽게 나왔다. 메뉴를 바꿀 생각으로 동태찜을 파는 곳을 가봤지만 그 요리를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결국 나의 문제는 고객이 원하는 요리와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서비스가 소홀했던 것이다. 장사를 통해 '이윤'만 남기려고 했지 그들에게 진정한 '가치'를 제공하지 못했던 것이다. 프랜차이즈 본부에 너무 의존했던 것도 잘못이다. 가맹점 계약 당시 그럴싸한 홍보 브로슈어를 펼쳐놓고 입에 침을 튀겨가며 장밋빛 전망을 늘어놓던 그들의 모습을 생각하면 분노가 치민다. 창업시장은 스스로 먹이를 찾아야 하는 정글과 같은 곳이다. 사육사가 던져주는 고깃덩어리만 받아 먹는 데 익숙해진 퇴직자들에게 정말 당부하고 싶은 말이다. 정리=윤성민 기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