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는 1928년 GE(제너럴 일렉트릭)사에 의해 개발됐다. 세상이 깜짝 놀란 획기적 제품이었지만 진정한 대중 매체로 자리 잡은 것은 60년대 들어서였다. 각광을 받는 데 30여 년이란 긴 시간이 필요했던 셈이다. 80년대 전세계 가전 시장에 확산되었던 VTR 역시 세상에 첫 모습을 드러낸 시기는 그보다 훨씬 이전인 1956년이었다. 10년 전에는 기존의 인터넷 속도를 두 배로 높인 56Kbps 모뎀이 얼굴을 내밀었으나 제대로 팔려보지도 못한 채 폐품이 돼버렸다. 당시 가격 대비 성능이 뛰어나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이처럼 사람들은 항상 '혁명적'인 그 무엇에 목말라 하면서도 막상 신기술이 시장에 진입하면 거부하거나 뜸을 들인다. 왜 그럴까. '혁신의 느린 걸음'(바스카르 차크라보티 지음,이상원 옮김,푸른숲)은 경제 주체들 간에 얽히고 설킨 '상호 연결성'에 주목했다. 이 개념은 '한 개인의 전략적 선택은 다른 사람의 결정에 의존한다'는 속성을 지녔다. 소비자의 구매 행위도 마찬가지.쇼핑몰을 찾거나 영화표 예매를 하려는 네티즌들은 대부분 타인의 취향을 참조하며 남들이 많이 찍은 상품에 한표를 던지는 경향이 있다. 이 행동은 제품 선택의 불확실성 속에서 현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으려는 의지의 표출이다. 문제는 이런 의지가 변화를 싫어하는 인간의 기본 심리와 맞물릴 때이다. 이렇게 되면 혁신을 하고자 해도 속도는 늦어질 수밖에 없다. 신제품은? 물론 잘 팔리지 않는다. 저자는 '혁신'이 시장에 정착하려면 그 팽팽한 균형 상태를 와해시킬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네트워크 전체를 흔들어 놓고 다수의 행동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방안을 주문한다. 예컨대 디지털 카메라가 완전히 자리잡기 위해서는 프린터 생산,이미지 편집 소프트웨어,온라인 사진 편집,컴퓨터 제조업체 그리고 광대역 통신사가 호흡을 맞춰 하나의 동작으로 움직여줘야 한다는 얘기다. 안정을 구가하던 음반 시장을 일거에 깨뜨림으로써 혁신에 성공한 냅스터,주춤하며 기다렸다가 나중에 개발자를 흡수해버리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마케팅 이론 등 눈길 끄는 경영 사례도 다양하게 소개돼 있다. 2백68쪽,1만3천5백원. 김홍조 편집위원 kiru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