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BBC와 함께 대표적 공영방송으로 꼽히는 일본 NHK방송이 개국 55년만에 최대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 25일 밤늦게 NHK의 에비사와 가쓰지 회장(70)이 직원비리 등 잇따른 불상사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NHK는 부회장 및 방송총국장 동반퇴진과 함께 임직원 임금을 줄이는 경영쇄신책을 내놨다. 그러나 '신뢰'를 생명으로 하는 NHK가 예전의 명성을 회복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란 지적이다. 직원비리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정부예산과 시청료에 의존, 방만하게 운영돼온 조직의 문제점이 곪아터졌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는 지난해 7월 한 프로듀서의 제작비 유용사건이 일파만파로 커진 것이다. 올 들어서는 4년전 종군위안부를 다룬 프로그램 제작과정에서 정치권의 외압이 있었다는 한 담당자의 폭로로 NHK의 '공정'한 이미지는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보도국 정치부장과 보도국장을 거쳐 지난 97년부터 세번 연임한 에비사와 회장은 정치권 실력자와 너무 가깝게 지낸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는 정계의 '마당발'답게 물러난 지 이틀만에 '고문'직함으로 다시 방송국에 남게 됐다. 국민의 시청료로 운영되는 NHK가 정치권과 밀착됐다는 사실은 스스로 존재의의를 부정하는 일이다. 분노한 국민들은 시청료 거부운동에 나서 이미 20여만명이 납부하지 않고 있다. 프로그램도 문화나 교육보다 예능 스포츠에 치중, 민영방송과 시청률 경쟁만 일삼는다는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NHK 프로그램이 민영방송보다 질이 좋다는 답변은 30%에 불과했다. NHK를 보는 이유도 방송 중간에 광고가 없고,전국에서 시청이 가능하다는 이유가 대부분이었다. 조치대학의 다지마 교수(미디어법)는 "사태발생 6개월만에 경영자가 책임지는 것은 때늦은 감이 있다"며 "자정능력을 잃은 조직에는 내부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NHK사태는 남의 일이 아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친정부 인사가 경영을 장악하는 한국의 방송에 시사하는 점이 적지 않다. 공영방송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도쿄=최인한 특파원 jan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