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붙는 세계 자원전쟁] <12> '블랙홀' 중국의 발빠른 행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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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의 블랙홀'
중국의 항구 가운데 가장 많은 하역능력을 자랑하고 있는 칭다오.지난 12일 새벽 2시 대낮같이 환하게 불을 밝힌 항구에서는 브라질에서 철광석을 싣고 온 20만t급 벌크선에서 인부들이 바쁘게 움직인다.
진차오 씨는 "작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들어온 배가 이제서야 하역을 한다"며 "2003년말 이전만해도 3~4일 정도 걸리던 하역 작업이 보름 이상 걸리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했다.
24시간 3개조가 돌아 가면서 일을 하고 있지만 밀려드는 선박을 감당할 방법이 없다.
한켠에서는 하역 시설 확충 작업이 한창하다.
블랙홀 차이나의 현장은 중국 영토 내에 머무르지 않는다.
중국은 지난해 12월 국방백서를 통해 영토 확장을 추구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선언했지만 '자원 영토'는 끊임없이 확대하고 있다.
지난해 11월.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중남미 순방을 10여일 앞두고 중국석유천연가스총공사(CNPC) 중국석유화학총공사(SINOPEC) 중국해양석유총공사(CNOOC) 등 3대 국영 석유화학회사 관계자 수십명이 중남미 출장길에 올랐다.
후 주석의 자원 정상외교를 앞둔 사전정지 작업을 위해서였다.
후 주석이 해외 순방할 때 정상외교 테이블에는 늘 자원협력 안건이 올라가고,그의 곁에는 자원업계 대표들이 있다.
시노펙(SINOPEC)은 작년 초 후 주석의 아프리카 순방 때 가봉과 처음으로 장기 석유무역협정을 맺었다.
해외 자원 확보에 나선 중국 기업 뒤에는 늘 자원외교에 발 벗고 나서는 중국 지도자들이 있다.
이들은 자원 부국에 대대적인 투자를 하겠다는 미끼를 내걸고 자원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원자바오 총리가 지난해 9월 러시아를 방문해 1백20억달러 투자 방침을 밝힌 것이나,후 주석이 중남미 4개국을 돌면서 향후 10여년에 걸쳐 3백억달러의 투자를 약속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중국을 찾는 해외 정상들과의 외교에서도 자원협력은 빠지지 않는 현안이다.
후 주석은 지난해 크리스마스를 중국에서 보낸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매장량이 10억배럴 이상으로 추정되는 주마노유전 등 15개 지역을 공동 개발하기로 합의했다.
베네수엘라는 세계 5위의 원유 수출국이다.
중국 지도자들의 지원사격 속에 업계는 해외 자원 개발을 더욱 공격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중국과 인접한 동남아와 중앙아시아를 비롯해 러시아 아프리카는 물론 중남미와 캐나다 심지어는 미국으로까지 파고들고 있다.
CNOOC가 미국 석유회사 우노칼 인수를 추진 중인 게 대표적이다.
미국의 앞마당인 캐나다에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
왕지밍 시노펙 총재는 "최근 캐나다에 대표단을 보냈다"며 "현지의 오일샌드(油砂)에 높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캐나다는 오일샌드의 하루 원유 생산량을 1백만배럴에서 10년내 3배로 늘릴 계획이다. 캐나다는 미국의 주요 원유 공급처이기도 하다.
중국 석유화학업체는 해외 유전 경매시장에서도 '큰 손'이 된 지 오래다.
중국 사회과학원 방문학자인 김성진 산업자원부 서기관은 "CNPC는 2003년 지분 50%를 확보한 아제르바이잔 유전지대(매장량 6억6천만배럴)에 투자할 때 차점자보다 40% 높은 가격을 써냈다"고 말했다.
과감한 베팅을 위한 '실탄'은 해외 증시 상장으로 유치한 자본과 정부의 지원사격에서 나온다.
중국 최대 석유화학업체인 CNPC는 자회사 중국석유총공사(페트로차이나)를 지난 2000년 뉴욕과 홍콩 증시에 상장시켜 30억달러를 조달했고,시노펙도 같은 해 뉴욕과 홍콩 증시 상장을 통해 35억달러를 끌어들였다.
브라질에 석유천연가스 파이프 라인을 건설하기 위해 최근 체결한 중국~브라질간 합작 프로젝트 소요자금 12억달러 가운데 10억달러 이상을 중국 수출입은행이 차관으로 제공할 예정이다.
"중국이 세계 유전지대를 본격적으로 사냥하기 시작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입니다.
중국은 시간이 걸리는 탐사보다 당장 생산이 가능한 광구에 큰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박재익 한국석유공사 베이징사무소장)
CNPC는 이미 20여개 국가에 44개 석유 및 천연가스 기지를 확보했다.
지난해 3천만t의 원유와 33억㎥의 천연가스를 여기서 생산했다.
CNPC는 해외 원유 생산을 하루 43만배럴(2002년 기준)에서 2007년까지 70만배럴로 끌어올릴 예정이다.
원유 생산의 70%를 해외에서 해결하는 엑슨모빌을 모델로 삼은 CNPC는 2020년까지 해외 자원 확보에 총 1백80억달러를 투자,원유 생산의 절반을 해외에서 조달한다는 장기 계획을 세워 놓고 있다.
시노펙도 지난해 12월 아프리카 최대 원유 생산국이며 세계 6위 원유 수출국인 나이지리아의 국영석유개발회사 NPDC와 2개 광구에 대한 석유탐사개발 계약을 체결했다.
중국의 해외 자원 확보는 석유에 머물지 않는다.
세계 최대 철강생산국 중국은 주원료인 철광석의 안정적인 확보를 위한 해외 투자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세계 양대 철광석 산지인 브라질과 호주의 철광석 개발지역에 지난해부터 중국 철강업체들의 투자가 본격화하고 있다.
또 밍메탈은 캐나다 광산업체인 노란다를 통째로 인수했으며 구리 등 광물자원을 겨냥한 지분 투자를 세계 각국에서 벌이고 있다.
중국의 '자원 영토' 확장 야망은 올해 위안화가 평가절상될 경우 더욱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베이징=오광진 특파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