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협정 체결의 한국측 주역인 김종필(JP) 전 자민련 총재는 협정 문서가 공개된 17일 일절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JP는 지난 62년 11월12일 중앙정보부장 자격으로 오히라 마사요시 당시 일본 외무상과 회담을 갖고 한·일협정의 분수령이 된 '김·오히라 메모'를 교환한 장본인. JP는 재일교포 신년하례회에 참석하기 위해 지난 7일 출국한 뒤 이날 현재까지 일본에 머물고 있다. 측근인 유운영 전 자민련 대변인은 "재일교포들의 요청으로 일본에 갔다. 한국에 있더라도 한·일협정 문제에 대해선 '노 코멘트'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JP는 지난 연말에도 국내외 언론들로부터 인터뷰 요청을 받았으나 "할 말이 없다"며 응하지 않았다. JP는 김·오히라 메모에서 대일 청구권 금액을 무상 3억달러로 산정한 뒤 결국 일본측으로부터 무상원조로 3억달러를 받았다. 당시 JP는 지식인들로부터 "3억달러에 민족의 자존심을 판 굴욕외교의 주역"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물론 JP는 "'제2의 이완용'이 될 각오로 조국의 근대화를 위해 한·일협정에 나섰다"고 말했다. 이같은 배상금액와 관련,지금도 JP는 상대적으로 우리나라보다 피해 정도가 작았던 필리핀 베트남과 비교할 때 너무 적게 받고 협상을 끝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JP는 독도 영유권 문제를 소홀히 다뤘다는 비판에서도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이세키 일본 외무성 국장이 62년 9월 "사실상 독도는 무가치한 섬이다. 크기는 '히비야'공원 정도인데 폭발이라도 해서 없애버리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강압할 수 있었던 것은 JP 등 한국측 관계자가 독도문제를 안이하게 다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한편 협정의 또 다른 주역인 이동원 전 외무장관도 언론과의 접촉을 피했다. 이 전 장관의 측근은 "(이 전 장관은) 3∼4년 전부터 어떤 언론매체와도 인터뷰를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