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장이 기업구조조정촉진법에 따라 채권행사를 유예토록 지시한 것은 법적구속력이 없으며 따라서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번 판결은 감독당국의 지시에 따른 대부분의 금융회사들이 사실상 배임행위를 했다는 것으로 확대해석될 수도 있어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서울고등법원 민사19부(재판장 김수형 부장판사)는 17일 SK네트웍스㈜(옛 SK글로벌)가 동양종금을 상대로 낸 1백94억여원의 환매자금 지급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금감원장의 채권행사유예 요청은 채권금융기관을 구속할 수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기업구조조정촉진법에서는 채권금융기관협의회가 채권행사 유예 결의를 하기 전까지 금융감독원장이 채권행사 유예 요청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그러나 유예요청을 거부하더라도 아무런 제재 조치를 규정하고 있지 않은 점 등에 비춰보면 법적 구속력이 없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금융계 관계자는 "대형 악재 발생 후 채권금융기관협의회를 소집하는 데에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며 "협의회가 개최되기까지의 과도기에 혼자만 살겠다며 독자행동을 하는 것을 정당화해 줄 경우 채권단 공동관리나 은행관리 자체가 성립할 수 없으며 약속을 지킨 금융회사만 손해를 보게 되는 모순이 생긴다"고 주장했다. SK글로벌은 2003년 3월11일 서울지검이 1조5천억원 규모의 분식회계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부도위기에 내몰렸다. 이에 금융감독원장은 12일 SK글로벌 채권금융기관협의회를 일주일 후인 19일 소집하겠다고 통보하면서 "협의회까지 SK글로벌에 대한 채권행사를 유예하라"고 지시했다. 동양종합금융증권의 머니마켓펀드(MMF)에 2백90억원을 예치하고 있던 SK글로벌은 18일 환매를 청구했다. 그러나 동양종금은 자사가 보유한 SK글로벌 회사채 원리금 1백94억여원을 뺀 금액만 돌려주겠다고 SK글로벌에 통보했고 이에 SK글로벌은 2003년5월 동양종금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지난해 5월20일 원고승소판결을 내렸으며 동양종금은 즉시 항소했다. 이관우·김인식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