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운동이 갈림길에 섰다. 참여정부들어 시민단체는 정부 각료나 국회의원 등을 대거 배출하면서 각종 설문조사에서 영향력 있는 집단 1,2위에 오르는 등 절정기의 위상을 과시하고 있다. 그러나 시대변화에 맞춰 새로운 이슈 발굴과 운동방식의 전환을 모색할 때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기존 시민운동 지도자급 인사들이 권력내부로 대거 진출하면서,전문가 그룹의 권력화 등 다양한 병리현상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막강 파워집단=최근 금융감독원이 내년부터 시행될 증권집단소송제의 대상인 82개 기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절반 이상(57%)이 앞으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할 집단으로 시민단체를 꼽았다. 기업들이 시민단체를 예의주시하는 이유는 시민단체의 막강해진 파워 때문이다. 시민단체의 입지는 참여정부 들어 더욱 강화됐다. 하지만 이런 위상 변화는 동시에 위기를 낳고 있다는 지적이다. 권력 감시라는 존재의의를 잃어버리는 대신 '기업 길들이기'와 같은 일방적인 정부정책에 시종일관 박수갈채를 보내는 '지원군'으로 변모했기 때문이다. 일부 단체들은 권력의 핵심부로 진출한 인사를 지렛대 삼아,정부 지원 예산을 최대한 배정받으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어 구태정치를 답습한다는 우려도 일고 있다. 김우룡 한국외국어대 언론학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 시민단체는 정부 감시자 역할보다는 정부와 권력을 공유해 이를 자신들의 입신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비판했다. ◆누구를 위한 운동인가=시민운동의 '무국적(無國籍)'현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98년 외환위기 이후 외자유치는 무조건 선이라는 인식 하에 참여연대 등 많은 시민단체들이 국내 대기업의 지배구조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높인 데 반해 단기성 외국자본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실제로 소버린과 헤르메스 TCI 등을 감시하는 시민단체는 작년 하반기 발족한 투기자본감시센터만이 거의 유일한 실정이다. 특히 특정기업이나 그룹에 대한 감시 견제기능만 비대해졌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또한 올 들어 어느 해보다 '미완의 국책사업'이 많은 이유도 여전히 자기들만이 절대선이라 여기는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특히 상당수 시민단체들이 특정 집단이나 지역의 이해관계에 얽혀 때론 '침묵'하고 때론 '동원'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환경과 인권 경제정의라는 보편적 가치보다는 지엽적인 이해관계에 휩쓸려 본래의 존재의의를 퇴색시켰다는 비판이다. 원전 방폐장 입지 선정 문제와 새만금사업 및 한전 배전사업 분할도 1년 내내 갈등을 반복하다 결국 매듭을 짓지 못한 채 해를 넘기게 됐다. 뿐만 아니라 고속철도 천성산 터널공사와 서울외곽순환도로 사패산 공사 등도 환경단체와의 잦은 마찰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현재 환경단체와 주민들의 반발로 중단된 대규모 국가적 개발사업 피해액이 3조원에 달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단체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서로 상생하는 길 찾아야=전문가들은 이제는 시민단체들이 도덕적 우월성 같은 단순한 시각에서 벗어나 국가 차원의 대승적 견지에서 기업과 우리 사회를 바라볼 것을 요청하고 있다. 박효종 서울대 교수는 "시민단체는 경영간섭으로 기업이라는 배의 노를 직접 저으려 하지 말고 올바른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충고했고 숙명여대 이남영 교수는 "시민운동은 좌절과 분노를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희망을 열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