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금융계의 화두는 '금융대전'이다. 다름아닌 거대 외국자본의 진출 때문이다. 세계 1위 은행인 씨티은행은 작년 한미은행을 인수해 한국씨티은행으로 재출범했다. 세계 2위 은행인 HSBC는 제일은행 인수를 앞두고 있다. 거래소시장에서는 외국인이 시가총액의 42%를 장악,50%초과를 넘보고 있다. 물론 외국자본의 진출을 무조건 색안경을 끼고 볼 필요는 없다. 그러나 외국자본은 지나치게 "자본이기주의"를 내세우고 있다는게 그동안의 경험이다. 중소기업 문제,LG카드사태,신용불량자 문제 등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본의 이익만을 관철시켜왔던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이미 진출한 외국자본에 대해서 역차별을 시도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따라서 외국자본과 국내자본의 건전한 경쟁을 유도하되 국내 경제에 도움이 되도록 금융정책을 펴야 한다는 것이 대체적인 지적이다. ◆외국자본 전성시대=국내 시중은행은 8개다. 이 중 한국씨티은행 제일은행 외환은행의 1대주주가 외국자본이다. 국민 신한 하나 조흥 등 4개은행도 외국인 지분율이 60%를 넘는다. 정부가 대주주인 우리금융지주(우리은행 모회사)만 정부 지분이 80.2%로 토종은행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외국자본의 은행 잠식 속도는 엄청나다. 하나은행의 경우 지난 2003년말 외국인지분율은 37.9%였다. 그러나 작년말에는 68.31%로 1년 사이에 30.41%포인트나 높아졌다. 지방은행인 대구은행(55.81%)과 부산은행(59.14%)에 대한 지분율도 50%를 넘어섰다. 토종은행이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보험업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알리안츠 ING AIG생명은 업계 4∼5위권으로 성장했다. 메트라이프생명은 SK생명 인수를 앞두고 있다. 그런가 하면 뉴브릿지캐피털은 삼성생명 지분 17.64%(3백53만주)를 인수하겠다고 나섰다. 증시의 외국인 영향력은 말할 필요도 없다. 작년말 현재 증권거래소시장 시가총액의 42%를 외국인이 갖고 있다. 세계 주요국가 32개국 중 헝가리 핀란드 멕시코에 이어 4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금융업뿐만 아니라 상장기업도 외국인이 싹쓸이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나친 자본이기주의=외국 자본은 외환위기 극복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 국가신인도 향상에 도움을 줬다. 외국 자본의 선진금융기법을 따라 잡느라 국내 금융회사들의 경쟁력이 강화된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절박했던 상황을 생각하면 이제 와서 외국자본을 적대시하는 것은 불공평하다(박병무 뉴브릿지 한국 대표)"는 하소연이 일리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문제는 외국 자본이 너무 자본이기주의에 집착해 국내 경제현실을 도외시한다는 점이다. 문제가 되고 있는 중소기업 대출만 봐도 그렇다. 외환위기 당시인 지난 97년말 현재 기업대출과 가계대출 비중은 제일은행(79% 대 21%)과 우리은행(80% 대 20%)이 엇비슷했다. 그러나 지난 11월말엔 우리은행은 54%(기업대출) 대 46%(가계대출)로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반면 제일은행은 30% 대 70%로 역전됐다. 부실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적은 안전자산 위주의 영업을 선호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식으로 외국자본이 거둬 들인 이익은 엄청나다. 외국인이 작년 1월부터 11월까지 배당수입으로 챙긴 돈만 47억3천만달러에 달한다. 작년 평균환율인 달러당 1천1백53원을 적용할 경우 5조4천6백억원을 쓸어갔다. ◆내국 자본 역차별 없애야=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제는 '금융주권'을 확고히 해야 한다는 주장이 만만치 않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금융감독 당국도 이런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금융감독 당국은 외국인 투자자들의 불공정거래 소지를 차단하기 위한 조치를 강도 높게 강구하고 있다. 국내은행의 외국인 이사에 대한 자격도 강화키로 했다. 증권거래법의 역외적용을 추진하는가 하면 유상감자 및 고배당을 통한 무리한 투자자금 회수에도 제동을 걸 방침이다. 물론 이런 조치에 대해 역풍을 우려하는 시각도 상당하다. 자칫하면 외국 자본의 유출과 투자기피를 초래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외국 자본 봐주기'나 '토종 자본에 대한 역차별'은 해소돼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외국 자본을 규제하자는 것이 아니라,내외국 자본을 동등하게 취급하는 금융환경을 조성해야만 국내경제의 당면과제도 해결될 수 있다(한 시중은행장)"는 지적이다. 하영춘 기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