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 국회에서도 회의장 점거와 몸싸움 등 정치판의 구태는 여전했다. 16대 국회와 달라진 모습이라면 여야의 '공수(攻守)'위치만 바뀌었다는 점이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열린우리당은 여당이면서도 소수당의 설움을 겪어야 했다. 한나라 민주 자민련 등 야3당이 정치관계법을 통과시키려 한데 맞서 회의장을 점거하고 장외 규탄집회를 갖는 등 투쟁에 나선 쪽은 여당이었다. 오히려 야당에서 '무책임한 발목 잡기'라고 공세를 펼 정도였다. 급기야 지난 3월엔 야당이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을 가결시키는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까지 발생했다. 그러나 4·15 총선을 거치면서 여야의 입장은 1백80도 바뀌었다. 열린우리당이 원내 과반의석을 차지하면서 13대 국회 이후 첫 '여대야소'체제가 형성된 것.1백21석을 얻은 한나라당은 제2당으로 전락,개헌저지선 확보에 만족해야 했다. 16대 국회에서 거대 야당에 발목이 잡혔던 정부 여당은 과반의 힘을 앞세워 개혁정책 추진에 나섰다. 타협이 안될 경우 다수결 원칙에 따라 법안을 처리하겠다며 야당을 압박했다. 반면 한나라당은 과반수 여당을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했다. 당연히 회의장 점거와 규탄 집회 등은 야당 몫이 됐다. 지난 9월 국회 정무위에서 17대 국회 첫 여야간 물리적 충돌이 일어났다. 열린우리당이 출자총액제 유지를 골자로 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단독 처리하려 하자 한나라당이 위원장석을 점거하며 회의 진행을 원천봉쇄한 것.작년말 야3당의 선거법 개정안을 저지하며 정개특위 위원장석을 점거했던 김희선 위원장이 이번에는 정반대로 자리를 빼앗기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물론 여야 격돌의 예고편에 불과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12월에도 여당의 국가보안법 폐지안 상정을 막기 위해 법사위 회의장을 점거,2주동안 국회가 파행을 겪었다. 내년에는 이같은 '여대야소' 구도가 심판대에 오른다. 열린우리당 소속 의원들이 잇따라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으면서 과반의석 붕괴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내년 4월 재·보궐선거 결과에 따라 여야구도는 새롭게 재편될 상황에 놓인 것이다. 양준영 기자 tetr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