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연구기금으로 써달라"며 삼성전자 주식 2만주(시가 90억원 상당)를 익명으로 서울대 의대에 기부한 노부부의 신원이 언론사에 의해 공개돼 파문이 일고 있다. 한 일간지는 21일자 조간에서 이들 부부가 '모 제조업체 회장 내외'라고 보도했다. 이로 인해 신분이 노출되지 않도록 해달라는 기부자의 신신당부가 깨지고 말았다. 이들 노부부는 지난 17일 서울대 의대를 방문,"절대 신분이 공개되면 안 된다"고 여러 차례 당부했다. 서울대 의대 측도 이를 받아들여 이름이 공개되지 않도록 해달라고 언론에 강력하게 요청했다. 언론이 거액을 선뜻 내놓은 인물을 찾아나서는 것에 대해선 문제를 삼을 수 없다. 무명씨를 찾아내 특종을 할 수도 있다. 궁금증을 해결해 주는 것이 바로 언론의 역할이기도 하다. 문제는 익명으로 해달라는 요청을 애써 깨뜨릴 당위성이 있었느냐는 점이다. 언론들은 노부부의 뜻에 따라 기부 배경을 전하는데 힘을 쏟았다. 연말을 맞아 가슴을 따뜻하게 만드는 기부 뉴스를 모든 언론이 경쟁적으로 보도했다. 기자들은 기부자가 누구인지 궁금했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 노부부와 서울대 측의 요청을 지켜주는 게 마땅한 도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며칠 뒤에 한 언론사가 노부부의 신원을 공개하면서 '아름다운 기부'에 찬물을 끼얹고 말았다. 서울대 병원 관계자는 "언론이 굳이 (기부자 이름을) 기사화하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일부 시민단체도 이번 보도와 관련,"기부 문화의 정신을 훼손하는 처사"라며 비난하고 나섰다. 해마다 구세군 냄비 속에 뭉칫돈을 넣어주는 훈훈한 정을 지닌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면 이번 보도 건은 정도를 벗어났다는 게 중론이다. 연말을 맞아 가난한 이웃을 돌아보려는 분위기가 사회 곳곳으로 급속하게 퍼지고 있다. 이번 보도가 불붙기 시작한 '기업의 이웃 사랑' 문화를 확산시키는데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특종 욕심으로 빚어진 어처구니없는 일이 반복되지 말아야 할 것 같다. 김문권 과학기술부 기자 m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