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이후 외국인들의 금융시장 장악속도가 지나치게 빨라지고 있다. 증시 비중이 대표적인 바로미터다.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 지분율은 2000년 말까지만해도 30% 정도에 머물렀다. 하지만 현재는 40.9%까지 수직 상승한 상태다. 이는 헝가리(72.6%) 핀란드(55.7%) 멕시코(46.4%)에 이어 세계 4번째로 높은 비중이다. 미국(10.3%) 독일(15.0%) 일본(17.7%)은 물론 경쟁국인 대만(23.1%)보다도 훨씬 높다. 그 결과 국내 우량기업들은 인수합병(M&A)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실제 12월 결산법인 4백85개 중 외국인 지분이 최대주주 지분보다 많은 기업은 삼성전자 포스코 등 48개사에 달한다. 우량기업 대부분이 외국투자자들의 영향권에 들어갔다는 얘기다. 금융종속이 심화되면서 경제종속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는 게 국수주의적 시각만은 아닌 것이다. 외국인지분 증가는 경영투명성을 제고하는 등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하지만 불안한 경영권을 악용,외국인의 경영간섭이 점차 노골화되면서 기업의 성장 잠재력을 떨어뜨리는 부작용이 커지고 있다. KT&G는 몇 달 전 해외IR(기업설명회) 과정에서 영국계 TCI자산운용으로부터 자사주 전량 소각을 요구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SK㈜가 소버린자산운용과 지분경쟁을 벌이자 의결권이 없는 우선주의 소각을 요구,관철시켰다. 최근에는 영국계 헤르메스펀드가 삼성물산의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며 M&A 가능성을 제기한 뒤 주가가 급등하자 이를 전량 매각해 막대한 시세차익을 거둬 증권가에 충격을 주기도 했다. 국내 기업들은 이에 대응하느라 자사주 매입 등 경영권 방어 비용에 지나치게 많은 돈을 쏟아붓고 있다. 올 들어 9월 말까지 국내 상장기업들은 자사주(신탁계약분 제외) 5조3천억원어치를 매입했다. 이는 유상증자 등을 통해 기업이 증시에서 조달한 자금(4조8천4백억원)을 훨씬 웃도는 규모다. 이상열 기자 mustaf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