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전 만해도 통신사업은 LG전선 영업이익의 5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핵심 중의 핵심 사업부였다. 당시 활황을 보이던 세계 정보기술(IT) 경기에 편승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전세계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9·11 테러'로 모든 것이 바뀌었다. 세계 IT 경기는 추락하기 시작했다. 광케이블 사업이 동반 침체의 길로 접어든 건 당연한 일. 올초 LG전선의 최고경영자(CEO)로 부임한 구자열 부회장에게 떨어진 숙제는 자연스레 '통신사업의 활로를 어떻게 찾아갈 것인가'일 수밖에 없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구 부회장이 내린 결론은 광가입자망(FTTH·Fiber to the Home) 사업에 LG전선의 미래를 거는 것이었다. FTTH가 기존 초고속통신망인 ADSL보다 10배 이상 빠른 차세대 통신망이란 점에서 시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실제 FTTH는 가정에 설치할 경우 전송속도 1백Mbps 이상의 초고속 인터넷은 물론 주문형비디오,양방향 데이터방송,인터넷 전화 등도 무리없이 즐길 수 있어 머지않은 시기에 기존 초고속통신망을 대체할 것으로 업계는 예상하고 있다. 구 부회장은 박의돈 부장을 팀장으로 하는 'FTTH 신사업팀'을 신설,발빠른 대응에 나섰다. 연구원,생산라인 직원,국내외 영업담당 인력 등 20여명의 외인구단으로 구성된 신사업팀은 우선 내부 역량 확보에 전력 투구했다. 부단한 노력 끝에 내놓은 첫 작품은 'ABF(Air Blown Fiber)' 시스템.기존 빌딩이나 아파트에 광케이블을 포설하는 새로운 공법인 ABF를 국내에서 유일하게 LG전선이 갖게 된 것이다. LG전선은 또 국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선 FTTH와 관련한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는 '토털 솔루션 서비스체제'를 갖춰야 한다고 판단,지난 7월 광통신 전송장비 업체인 콤텍시스템과 제휴를 맺었다. 내부 역량확보 작업이 일단락되면서 적극적인 영업에 나서자 곧바로 실적으로 연결됐다. 우선 지난 9월 충남 아산의 8백가구짜리 '정보통신 특등급 아파트'의 FTTH 구축공사를 수주했다. 국내에서 FTTH를 상용화한 것 가운데 최대 규모였다. 성과는 해외에서도 이어졌다. 같은달 파키스탄 지역통신사업자로 선정돼 FTTH를 기반으로 한 통신망 사업으로 '첫 해외 수주'라는 기록을 세웠다. 규모는 1천5백만달러 수준.LG전선은 그동안의 자신감을 바탕으로 지난 10월 FTTH를 기반으로 본격적인 시스템통합(SI) 사업 진출도 선언했다. 이라크 내 19개 대학교에 FTTH망을 구축하게 된 것을 계기로 여기에 인터넷 등 멀티미디어 시스템까지 구축해주는 SI사업도 병행키로 한 것이다. LG전선의 성공적인 FTTH 사업은 국제적으로도 인정받아 최근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 태평양 FTTH 협의회' 발족 모임에서 코닝 지멘스 히타치 등과 함께 국내 업체로는 유일하게 상임위원회사로 선정됐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