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을 옥죄었던 증권관련 집단소송제가 과거 분식에 대해서는 대폭 사면해주는 쪽으로 법개정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정부가 내년 1월 집단소송제 도입에 따른 기업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법 공포일(2004년 1월20일) 이전에 이뤄진 과거분식은 집단소송 대상에서 제외하고 △자산 감액재평가와 감가상각비를 통한 분식회계를 해소하는 방안 등 두 가지 카드를 들고 나온 것. 금융감독위원회는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증권관련 집단소송법 개정방안을 여당인 열린우리당에 이미 제출했으며,의원입법 방식으로 늦어도 내년 2월 이전에 개정안을 통과시킨다는 방침을 정했다. ◆올 1월 이전 분식회계는 집단소송에서 제외 윤증현 금감위원장은 8일 "자산 규모 2조원 이상 기업들을 대상으로 내년 1월부터 시행되는 증권관련 집단소송제는 '양면의 날을 가진 칼'이라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며 "미국의 경우 상장기업 전체의 2∼3%에 해당하는 2백여개 기업들이 매년 집단소송을 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집단소송이 제기되면 주가가 폭락하고,심지어는 파산에 이르게 된다는 것.윤 위원장은 "그뿐만 아니라 집단소송을 취하하기 위한 화해비용이 천문학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며 제도개선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금감위는 집단소송제를 예정대로 시행하되 소송대상에서 '법 공포일 이전의 분식회계'를 제외,기업들의 소송피해를 줄이기로 했다. 분식회계를 해소하는 방안으로는 전기오류수정뿐만 아니라 자산 감액재평가와 감가상각비 항목을 활용할 수 있도록 허용함으로써 기업들이 회계장부를 실질적으로 고치도록 유도할 방침이다. ◆재고자산재평가 또는 감가상각비로 과거분식 정리 가능 분식회계 유형 중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 재고자산 등의 과대평가나 감가상각비 축소라는 점을 감안하면 금감위가 제시한 '분식회계 해법'은 상당수 기업들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될 전망이다. 예컨대 의류를 판매하는 기업이 팔리지 않은 재고의류를 신상품인 것처럼 속여 장부를 기재함으로써 손실을 축소하거나 제조업체들이 보유설비에 대한 감가상각비를 적게 기재하는 방법 등으로 손익계산서를 '분식'하는 사례가 많았다. 재고자산 평가액을 내년 결산에서 수정하거나 감가상각비를 제대로 처리하는 방식으로 분식회계를 수정할 수 있다는 게 금감위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 경우에도 민법이나 증권거래법에 따른 개인별 소송을 피할 수는 없지만,일반인이 위규 여부를 파악하기가 어려워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가능성도 그만큼 줄어든다. ◆3∼5년만 유예하는 방안도 검토 정부는 기업이 3년 또는 5년이 지난 뒤에도 과거 분식회계를 털어내지 못할 경우 집단소송 대상에 도로 포함시키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정부 관계자는 "작년 말 외부감사법 등 회계관련법이 개정돼 기업들이 분식회계를 방치할 경우 집단소송법이 아니더라도 민·형사상 처벌이나 개인별 소송을 당할 위험이 훨씬 더 커졌다"며 "때문에 기업들 스스로 가능한 한 이른 시일 내에 분식을 바로잡아야 할 절박한 요인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는 "따라서 굳이 특정한 시한을 정해 과거분식을 해소하도록 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지만,영구 제외 조치를 취할 경우 자칫 개혁 후퇴로 비쳐질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3∼5년가량의 유예기간을 주어 이 기간에 과거분식을 해소하도록 하고,그 기한을 넘긴 경우에는 집단소송을 적용받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고 전했다. 현승윤 기자 hyunsy@hankyung.com